본문 바로가기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11 펜실바니아의 어느 시골에서

52. 양심선언을 발표하다

2002 12 19, 이변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게 석패했다. 숨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보수표 “2인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와 한나라당의 패배는 안일함 때문이었다. 김칫국부터 마신 게 패인이었다. 이회창 후보자 자신은 일찌감치 대세론에 안주하였고, 그의 측근들은 정권 교체 후 차지할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듯이 보였다. 모두가 한여름밤의 꿈에 젖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패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이유는 보수진영의 분열과 DJP 연합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김종필 총재와 이인제 후보를 끌어안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는 보수 성향의 정몽준 후보 진영을 포용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더욱이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를 저지하지도 못했다. 노무현 후보의 충청도 행정수도 건설 공약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반미 촛불시위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해 세모는 어느 해보다 우울하게 보냈다. 김대중 정권의 반역의 세월을 정리할 기회가 사라진 데 대해 나는 깊히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5년 동안 저질러진 반역과 부패를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컸다. 나 개인적으로도 불행했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서도 불운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 당선자가 청와대를 예방하고 걸어 나오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게 잘 됐다”고 말했다. 대체 무엇이 잘 되었다는 말인가? 나에게는 그 말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덮을 수 있게 되어서 잘 되었다는 말로 들렸다. 두 사람의 희희낙낙하는 광경을 보면서,‘나 혼자 만이라도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굳어져 갔다.

해가 바뀌고 2003 1월 중순이 되자, 정권 인수위의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현 정권에서 대북송금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신 정권이 전 정권과 뭔가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싸고 신, 구 정권 간에 불편함이 있는 듯 했다. 두 진영간에 뭔가 의견정리가 제대로 않된 느낌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로써, 잠시 잠잠했던 대북 비밀송금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대북송금에 대한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던 와중에, 2003 1 29, 놀랍게도 아니 고맙게도, 오마이뉴스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북한에 2억 달러를 보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1] 오마이뉴스는 자신들이 대단한 특종이라도 한 것처럼 발광을 떨었다. 처음으로 고위 당국자의 입에서 대북송금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럴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더러운 권언유착의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청와대의 누군가가 – 아마 박지원 실장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 오마이뉴스에 일부러 흘린 게 분명해 보였다.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매체에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축소하여 슬쩍 흘린 게 틀림 없었다. 그 기사를 읽고 나는 직감적으로, ‘김대중이 부분적으로 대북송금을 시인하는 척하고 대충 뭉개고 넘어가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행동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마침 그 날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세상에 알리기에 가장 적당한 시점이었다. 사람이 움직이면 정보도 따라 움직이고, 설날 가족들이 모이면 자연히 정치얘기도 나눌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2003 1 30, 조갑제닷컴 홈페이지 게시판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싸이트에다, “회칠한 가면, 악마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반역적인 대북 뒷거래에 관한 글을 올렸다.[2] 결심하기까지는 오랜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심한 후에는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2주일이 지나고 2003 1 14, 퇴임을 열흘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박지원 실장과 임동원 특보를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끝내 완전한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김대중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북측에 5억불을 송금했다”며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통치행위라는 억지 논리를 동원하며 시종 변명으로 일관했다. “ 1 달러도 보내지 않았다고 박박 우기던 자세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의 영악한 위선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다음 날인 2003 2 15, 나는 준비해 뒀던 두번째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그 글은 임동원 씨의 대북 커넥션 의혹을 상세하게 다룬 글이었다.[3] 내가 혼자서 오랫 동안 임동원의 간첩혐의를 내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나의 발품과 정성이 베여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증거자료가 뒷받침되지 않아서 그런지, 기대와는 달리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편, 정권이 바뀌고 3월로 접어 들자,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문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재연되었다. 민주당의 이낙연 대변인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서서,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문건은 조작된 가짜 문서다”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의 고질병적인 거짓말을 들으면서,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단 한번 만이라도 거짓이 엄정히 심판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 번은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이라는 조직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 한번만이라도 진실이 온전히 드러난다면, “조직의 배신자”라는 비난은 감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2003 3 24,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 도청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다시 인터넷에 올렸다.[4]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내놓았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는 것이다. 뭔가 소동이 벌여져야 정상인데 여도 야도, 국정원도 언론들도 어떠한 반향을 보이지 않았다. 한나라당조차 침묵하는 데에는 어이가 없었다. 지들이 선거 전에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선 말이다. 이 글은 2년 후 미림팀의 도청사건이 다시 불거지기 전까지는 철저히 잊혀졌다.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pdf


오마이뉴스 2002. 1. 29 북에 2억불 송금했다제하 기사 참조.

1부 양심선언 중 “회칠한 가면, 악마의 초상” 참조.

1부 양심선언 중 “분칠한 가면, 간첩의 초상”참조.

1부 양심선언 중 “거짓의 희극, 도청의 진실”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