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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4. 문민정권의 뒤안길 I

19. 계명구도와 낭중지추

        오정소 실장은문민정권의 해결사였다. 모든 악역을 도맡아 했다. 실제로,“오 실장이 96 12, 전격적으로 잘리지만 않았더라면, 문민정권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1] 나는 이러한 견해가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오 실장은 평소 계명구도(鷄鳴狗盜)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즐겨 인용했다. 계명구도란 말은, “점잖은 사람이 배울 것이 못 되는 하찮은 기술이나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재주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낭중지추란 말은, “능력 있는 사람은, 마치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는 송곳처럼, 그 능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오 실장은 특별히 재주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곁에는 괴팍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언젠가 오 실장이, “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 꼴통들만 모이냐?”고 농담 삼아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당신이 꼴통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꼴통은 꼴통끼리…”라는 말이 목구멍 안에서 맴돌았다 

오 실장 주위의 인사 중에서도 정성О 씨와 공운О 씨는 좀 소개할 만한 것 같다. 이들은 내가 국정원에서 만난 가장 별종 인간들인 동시에, 해결사 오 실장의 오른팔 왼팔이었기 때문이다. 정성О 씨는 후에 진승현 게이트의 주인공이고, 공운О씨는 안기부의 미림팀장으로 언론에 소개된 사람이다. 나는 부속실에 근무하면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매일 보았다.

정성О 씨는 아마 국정원 역사상 최고의 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광주의 어느 명문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진학했다고 한다. 육사 1학년 때 진해 해군사관학교로 하계 훈련을 갔다가, 철모로 해군 제독의 머리를 내려쳤다가 퇴학당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 법과를 마치고 안기부 정규과정 13기로 입사했다. 그는 신입직원 시절부터 깡패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지난 1990년대 초,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을 때, 그는 큰 사고를 쳤다고 한다. 수원지법 강 모 부장과 모 조직폭력배 두목 등과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는데, “옆 방에서 술을 먹던 깡패들끼리 시비가 붙어 칼부림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일은 한참 후에야 언론에 한 줄 기사가 났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세네갈의 파견관으로 나갔다. 정보기관에서 도피시켜 준 것이다. 그 때 해외공작국 인사과장이 오정소 과장이었다.

그는 원래 수사국 출신이었는데, 수사국 출신 직원이 해외 파견관으로 나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사관이 아프리카로 파견될 일은 더군다나 없었다. 아마 태권도 교관이나 비슷한 직책을 만들어 흑색으로 파견되어 갔던 것 같다. 그는 파견관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오면서 대공정책실에 합류했다. 오 실장이 그를 대정실로 부른 것 같았다.

정성О 씨는 언제 봐도 시한폭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검찰과 깡패 사회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오 실장의 특명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검찰의 청와대 보고서를 입수해 오기도 했다. 검찰이 청와대에 보고하는 보고서는, 검찰이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문건이었다. 가히, “검찰의 영혼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안기부에서 이 보고서를 입수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이러한 일을 처리해 냈다.

그는 지난 1998년 정권이 바뀐 후 한동안 전라도 출신들에게 찍혀 한직으로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권력 핵심으로 진입하여 엄익준 차장과 김은성 차장의 최측근으로 행세했다. 진승현 게이트는 그가 이 두 차장 아래서 특명사업을 수행하다 사고가 난 것이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진승현 게이트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정성О 씨는 진승현 사기 사건으로 1 6개월간 감옥 신세를 졌는데, 그는 출옥한 후에도 뒤에서 진승현의 사기 행각을 계속 조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찍부터 정치권에 줄을 댔던 것 같다. 지난 2001년 구속되면서 그는 조선일보와 전격 인터뷰를 했다. 그는 그 때 폭탄선언을 하듯이 자신과 김홍일과의 관계를 밝혔다. 기사에 의하면, 그는 김홍일의 무릎을 잡고, “형님, 깡패 XX들과 어울리지 마세요하고 충고했다고 한다. 정성О 씨는 출옥하고 난 후, DJ의 사생아 문제와 정몽헌 씨 피살 의혹 등을 언론에 제보했다. 그는 동교동의 배신에, 배신으로 답한 것으로 보인다. 

공운О 씨도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쩌면 계명구도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했고,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일에 관한 한, 그는 민완하고 배짱있는 사람이었다. 책임감도 강하고 의리도 있었고, 열정과 자부심도 대단했다.

지난번 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그가 무슨 크게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 나는 그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에게 그런 일을 시킨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인가 노태우 정권에서 미림팀 요원으로 일했던 선배가 일화를 들려 준 적이 있었다. TK 인사들에 대한 작업(?)을 마치고 한참 지난 후 장비를 회수하러 작업실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뒤에서 자기를덮치더라는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눈치 채였구나하고 판단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미친 듯이 대들어서겨우 상황을 모면했다고 한다.

공운О 씨도 비슷하게 낭패당한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한 번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예약한 자리에 도청기를 꽂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비서실의 누군가가 저녁 식사자리에 나타나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김영삼 대통령이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출현에 혼비백산하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미림 사업은 극비에 속하는 사업이었다. 안기부 직원들 중에서도 같은 부서 내 사람들만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르던 사업이었다. 김덕 부장 같은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고 퇴임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운О 씨는 그런 일을 태연스럽게 해냈다.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미림팀은 공운О 팀장을 비롯해 3명으로 이루어진 초미니 조직이었다. 공 팀장과 그를 보조하는 젊은 직원이 두 명 있었다. 장ОО 직원과 박ОО  직원이었다. 이들은 둘 다 착하고 책임감 있는 요원들이었다. 미림팀 일이 위험한 일이다 보니, 아무도 이 일을 선뜻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 팀장은 요원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언젠가 공 팀장은 나에게 박 모 직원을 팀원으로 영입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 준 적이 있었다. 공 팀장이나 박 모 직원이나 둘 다 정규 일반 직원이 아니라 행정보조 요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공 팀장은 박 모 직원에게, “9급 출신이 회사 내에서 살아 남으려면 미림 일이 가장 낫다설득한 끝에 그를 영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번 미림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박 모 직원은 가택수색까지 당하고 악의적인 언론에 시달렸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미림팀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그가 욕을 먹는 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이 지면을 빌어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운О 씨는 매일 오전 부속실에 들러 밤새 작업한 결과를 보고했다. 미림이 수집한 정보는 손 꼽을 정도의 인원만 볼 수 있는 안기부 내의 최고급 정보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야사(夜史)였다. 그가 작성한 미림보고서는 오 실장이 직접 관리했기 때문에 내가 볼 수는 없었다. 부속실의 모든 보고서는 내가 책임지고 관리했지만, 미림보고서만은 예외였다. 나는 어쩌사 오 실장의 책상 위에 놓인 미림보고서를 가끔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가 수집해 온 정보는 언제나 나라를 뒤집을 만한 폭발력이 있는 소재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노라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적나라에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번 언론에 소개된 대로, 박관용 비서실장 같은 사람도 미림보고서 한 장에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이회창 국무총리나 박상범 경호실장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경질되었다. 나는 미림보고서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지켜보면서, 정보기관의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 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pdf



주간동아 2005. 08.29 , “오정소 침묵에 국정원 떤다제하 기사 참조.

나는 정성О 씨에 대해 감찰실 수집관이던 박 모씨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들었다. 박 모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관련 보고서 유출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고 파면되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던 진승현을 형 집행정지로 빼낸 후, 미국의 한 벤처 기업의 문 모 씨와 합작으로, 위장투자와 허위공시 등을 통한 국제적인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가 있다.

정성О 씨와 김홍일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1.11.20 자 조선일보 국정원 현 간부도 진승현 게이트 연루제하 정성О 인터뷰 기사 참조.

SBS 뉴스추적2005 4 20일 방영,“DJ의 숨겨진 딸편 참조.

월간조선 2006 2 월호 정몽헌 현대 회장의 죽음의 행로기사 및 동 지 3월호 정몽헌 회장 죽음의 5대 미스터리제하 기사 참조.

에게 이 얘기를 해 준 김재О 씨는 현재 국정원의 경제과장이라고 한다.

미림팀의 활동에 대해서는, 2005. 5. 22. 방송된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