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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4. 문민정권의 뒤안길 I

17. 문민정권의 ‘넘버 쓰리’

내가 부속실에서 상관으로 모셨던 오정소 실장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 실장을 문민정권의 아이콘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문민정권의 핵심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는 문민정권의 막후 핵심 실세였던 김현철 씨와 고등학교와 대학(고대 사학과) 동창이라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가 신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이름을 불러주면 최측근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가령, “영춘아 오늘 나랑 조깅 하자라고 말한 게 알려지면, 김영춘 의원이 금방 최측근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한 번은 김 대통령이 서울시를 순시하면서, “정소는 어디 갔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금새오정소가 최고 실세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오 실장은 김영삼 정권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지난 90년대 말, 주먹의 세계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넘버 쓰리』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얻었다. 좀 억지이긴 하지만 오 실장은 『문민정권의 넘버 쓰리』에 비유할만 했다. 물론, 문민정권의 『재떨이』는 이원종 수석 정도가 될 것 같다.

문민정부 초기, 안기부 내에서는 오 실장과 황창평 차장이 실세였다. 황 차장과 오 실장은 서로 잘 통했다. 아마 고대 동문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오 실장과 황 차장은 문민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 한다.

특히, 황 차장은 이른바 노란봉투사건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노란봉투 사건이란, 노태우 정권 말년에 YS가 소위 노란봉투를 들고 청와대에 들어가 노태우 대통령과 정면 승부를 벌인 사건이었다. 봉투 안에는 안기부가 YS를 뒷조사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이 사건은 YS가 노태우 대통령을 압박하여 후계권력을 접수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황창평 기판국장이 문제의 노란봉투를 YS 측에게 건네 줬다고 한다. 확인된 얘기는 아니었지만, 분위기상으로 아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듯 했다.

오 실장은 원래 해외공작국 출신이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 그는 해외공작국 행정과장을 하다가 대정실 협력단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언론여건이 취약해 지자, 언론을 조정 통제하기 위해 대정실 내에 협력단이란 조직을 신설했는데, 그가 초대 협력단장이었다. 해외 부서의 간부가 국내 부서로 옮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 언론계와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인연이 고려 되었던 것 같다.

그의 친형은 모 언론사 간부 출신이었고, 그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강재 회장 등 언론계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장을 하던 김철씨는 오 실장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마 고교 동창이었던 것 같다. 오 실장과 김 부장은, 서로 소야, 철아하면서, 끝까지 부어라, 마셔라하는 사이였다.

        그 후 김철 부장은 조선일보를 그만 두고, 오 실장의 당시엔 이미 차장으로 승진한 후였지만 - 후원으로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 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안아 그 당의 대변인까지 되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김대중 씨는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점에서 양 김 씨는 대조를 보인다.

 그들에 비해 김덕 원장은 학자 출신이라 그런지 정보기관장답지 못했다. 그는 정보기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조직을 장악하는 데도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