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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4. 문민정권의 뒤안길 I

19. 계명구도와 낭중지추 오정소 실장은 “문민정권의 해결사”였다. 모든 악역을 도맡아 했다. 실제로,“오 실장이 96년 12월, 전격적으로 잘리지만 않았더라면, 문민정권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1] 나는 이러한 견해가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오 실장은 평소 계명구도(鷄鳴狗盜)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즐겨 인용했다. 계명구도란 말은, “점잖은 사람이 배울 것이 못 되는 하찮은 기술이나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재주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낭중지추란 말은, “능력 있는 사람은, 마치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는 송곳처럼, 그 능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오 실장은 특별히 재주 있는 사.. 더보기
18. ‘쉰’ TK vs. ‘신’ TK 보좌관과 보좌원간의 업무분장이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실장과 부실장의 개인적인 심부름이나 비공식적인 잡무도 모두 내 차지였다. 대체로 이 보좌관이 주로 오 실장을 챙기는 데 비해, 보좌원인 나는 세 명의 부실장을 챙겼다.. 제 1 부실장은 임경О 단장이었는데, 그는 정치, 학원, 종교 분야를 담당했다. 임 단장은 김기섭 기조실장의 대구 영남고 후배였다. 그 후, 그는 오 실장이 차장으로 승진되자, 대공정책실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당시 우스개 소리로 “TK도 여러 가지”라는 말이 돌았다. 이른바 『신TK』와 『쉰TK』가 있다고 했다. 구정권에서 잘 나가던 TK 인사들은 쉰TK라고 불렸고, 신정권에서 새로 부상한 TK 인사들을 신TK라고 불렸다. 안기부 내에서는 영남고 출신들이 대표적으로 신TK로 분류되었다.. 더보기
17. 문민정권의 ‘넘버 쓰리’ 내가 부속실에서 상관으로 모셨던 오정소 실장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 실장을 문민정권의 아이콘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문민정권의 핵심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는 문민정권의 막후 핵심 실세였던 김현철 씨와 고등학교와 대학(고대 사학과) 동창이라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가 신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이름을 불러주면 최측근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가령, “영춘아 오늘 나랑 조깅 하자”라고 말한 게 알려지면, 김영춘 의원이 금방 최측근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한 번은 김 대통령이 서울시를 순시하면서, “정소는 어디 갔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금새 “오정소가 최고 실.. 더보기
16. 새끼 보좌관 나의 신문과 생활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대공정책실 부속실 보좌원으로 불려 갔기 때문이다. 신문과에 배정된 지 한 달여가 지난 때, 인천지부장에서 새로 대정실장으로 부임한 오정소 실장이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나를 대공정책실 부속실의 보좌원으로 임명했다. 내가 보좌원으로 불려간 것은 일종의 행정착오의 성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보좌원은 대개 부서에 배치된 지 1, 2년이 지나, 부서 돌아가는 사정을 조금 아는 직원 중에서 뽑는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오정소 실장은 내가 부서에 배치 받은 지 1-2년 지난 된 직원으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고려조차 하지 않고 그저 나의 학력 등을 보고 대충 뽑았을 것이다. 신문과장은 내가 부속실로 불려가는 게 못마땅했던지, “오 실장과 무슨 사이냐? 어떻게 해.. 더보기
15. “같이 좀 못하자”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며칠 휴가를 보낸 뒤, 나는 94년 1월 초부터 소위 “남산”으로 출근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공포와 전율의 대명사로 알려진 “남산”이었지만, 나는 거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당시 남산에는 국내 정보부서뿐만 아니라, 대공수사와 외사방첩 부서, 그리고 감찰실 등 안기부의 핵심 부서가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국내정보 수집부서인 대공정책실로 발령이 났다. 우선 대공정책실이라는 명칭부터 좀 설명하는 게 좋겠다. 대체로 국정원의 여러 부서의 명칭은 그 부서의 실제 업무 성격과 거리가 있다. 굳이 “위장명칭”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대정실은 명칭대로라면 간첩을 잡기 위해 정책을 세운다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어야 제격이겠는데, 실제로는 국내 정치정보 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