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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5. 문민정권의 뒤안길 II

24. 연예계라는 요지경 세상

나는 우리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 전체가 얼마나 한심한 수준으로 타락해 있는지를 절감했다. 정계와 재계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법조계, 의료계, 종교계, 교육계, 문화계, 예술계, 언론계, 연예계우리 사회 어디를 둘러 봐도 희망의 싹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내가 들여다 본 우리 사회는 이미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부패와 뇌물, 협잡과 비리가 만연했고 반칙과 편법, 음모와 모략과 술수가 판을 쳤다. 건전한 직업윤리, 정직과 양심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황우석, 신정아라는 두 명의 걸출한 스타가 나타나,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웅변해 보였다. 내가 본 9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도 이미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정인을 거론해 좀 안됐지만, 내가 본 두 사람의 공인에 대한 사례를 들어 보겠다. 텔레비전 화면에선 젊잖고 젠틀하고 인자한 이미지를 가진 모 중견 남자 아나운서가 있다. 그는 여러 모로 대한민국 최고의 신사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사생활은 신사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는, “룸살롱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온갖 지저분한 짓을 스스럼 없이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나는 그가 어느 상갓집에서 술 취해 가발이 벗겨지도록 행패부리는 걸 내 눈으로 두어 차례 본 적도 있다.

또 다른 예로 어느 미스코리아에 대한 얘기를 들 수 있겠다. 지난 90년대 중반, “소위 명문 K대 출신이 최초로 미스코리아에 선발됐다고 세상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 우리 나라에도 지성을 겸비한 인물이 미스코리아로 뽑힐 때가 되었다며 그럴 듯한 당선 소감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작 그녀 자신은 승마 특기생이었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부동산 갑부였다. 승마 특기생이라고 해서 지성을 갖추지 말란 법은 없지만, “글쎄다싶었다. 그녀는 한동안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다.

참고로, 우리 나라 미스코리아 선발은 그제나 이제나 문제가 아주 많다. 미스코리아는 유명 미용실에서 만들어낸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우스운 얘기지만 우리 나라의 미스코리아 행사는 매년 모 신문사가 주관한다. 이 신문사의 전 사주가 한 때 화류계에서 좀 놀던(?) 사람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연예계 얘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나는 연예계라는 곳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난장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가십 거리가 마르지 않는 곳이었다. 쓰레기 같은 스캔들을 스물 네 시간, 사시사철 연중 무휴로 생산해 내는 공장이었다.

어느 영화 선전 문구에,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지 그 이상을 볼 것이란 표현이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연예계가 바로 그 짝이었다. 온갖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벌어지는 요지경이었다. 물신주의와 한탕주의가 판치는 복마전이었다.

몇 년 전 시중에는, 누구는 손만 들면 된다 해서 택시라고 불리느니, 누구는 줄만 서면 된다 해서 버스라고 불리느니, 하는 말들이 돈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 있던 배우였는데, 그 후 그녀는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재기를 도모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한 명은 그 후 외국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하고 요즘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소위 『연예계 X 파일』이란 것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어느 중견 연예인은 봉사하고 난 후에 별거 없죠?”라고 인간적인(?) 코멘트를 하곤 했다고 해서 유행어가 되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X파일이란 걸 읽어 보니,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해에는 “X파일의 후속편까지 등장한 모양이다. 이러한 후속판은 아마 계속 업데이트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연예계는 어쩌면 영원한 구제불능이 아닐까 여겨진다. 내가 대정실에 근무할 당시 연예계에서는, “ОО아 차 바꿀 때 되지 않았니?”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 말은 연예계의 삼대 뚜쟁이 중의 한 명으로 알려진 중견 아줌마 연예인이, 인기 정상에 있던 어느 여자 연예인에게, “오늘밤 서비스가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할 때 사용한 암구호(?)였다고 한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매춘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비스 산업이다. 이에 대해 도덕을 논하는 일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 바닥의 특수한 현실에 대해서는 몇 마디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몇 마디 사족을 덧붙여 보겠다. “대개 꽃값은 그 시대의 구두 한 켤레 가격과 맞먹는 선에서 정해진다게 통설적 위치를 점하는 설명이다. 그런데, 위의 암구호에서 보듯이 우리 연예계에서는 구두 한 켤레 옷 한 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승용차 한 대 값이라고 했다.  요즘은 수억이나 하는 승용차도 있으니 얼마나 더 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을 알게 되면 일순간 근로의욕이 싹 가시게 된다. 입이 딱 벌어지고, 욕부터 나오게 된다. 인류 역사상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꽃값 인플레가 심한 곳이 또 있었을까 싶다. 유일하게 21세기 한반도에만 있는 일이다. 아마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될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해괴한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좀 접근해 설명해보면, “이 시장에서는 지독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이 고상한(?) 서비스업이 정치권력과 경제금력을 이어주는 은밀한 윤활유 같은 구실을 하는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연예인 매춘은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 구조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소개하는 뚜쟁이와 돈을 대는 기업인, 그리고 수요자인 정치인이 정교한 메커니즘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이 서비스업은 우리의 세계적인(?) 수준의 요식업과 숙박업 같은 삐까뻔쩍한후방산업이 건실하게 받쳐주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난 95년 초 연예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있었다. 표면적인 명분은 연예계에 만연한 부패를 일소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국민들의 비판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호도책이었다. 당시 연예계 사정은 검찰이 수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청와대의 민병환 비서관이 총대를 멨다. 안기부의 방송과가 측면에서 정보 지원을 했다.

검찰이 막상 연예계 내부를 들춰 보니, 악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돈과 섹스와 마약이 미쳐 돌아가는 난장판이었다. 재미 있었던 현상은,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일수록 뒷말이 더 풍성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커넥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메커니즘의 주요한 부분이 촌지와 뇌물과 로비였다. 우리나라 언론계 중에, “유독 연예 스포츠계 기자들의 부수입이 가장 짭짤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 있을 것이다.

당시 주말 연속극에 갓 등장한 까만 용모의 눈이 크고 귀여운 여자 연예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보니 그야말로 인생역정이라 할 만 했다. 그녀는 요즘 코미디 프로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미모의 모 탤런트 모녀가 모 재벌 3세를 엮으려고 공항에서부터 입체적인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 안테나에 잡히기도 했다. 얼마전 그녀는 그 재벌 3세와 불화설이 나돌더니 이혼하고 말았다. 요즘 다시 텔레비전에 복귀하여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연예계를 들여다보고 놀라웠던 점은, 엄마가 직접 매니저를 하는 연예인일수록 사생활이 더욱 문란했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엄마가 자기 딸을 매춘으로 내모는, 믿기 어려운 비정한세계였다. 육감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모 연예인이 특히 그렇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연예계의 3대 뚜쟁이가 누구누구라느니 하는 소문도 대체로 확인되었다. PD와 연예인들간의 몸상납과, PD와 기획사 간의 잃어주기포커도 사실로 드러났다. 유명 시나리오 여 작가와 그녀의 대학동창이며 친구였던 모 여 탤런트가 배역장사를 한다는 소문도 거의 사실이었다.

당시 어느 음악방송 유명 DJ, 기네스북의 연속 방송출연 기록을 하루 하루 갱신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느닷없이 잠적해 버렸다. 검찰이 자신에 대해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DJ,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신곡을 소개해 주는 대가로, 곡당 2- 300 만원 가량의 뇌물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한 곡당 그 정도로 받았으면 벌이가 괜찮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그를 체포해서 사법처리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몇 달간 진행된 검찰의 수사도 결국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됐다. 수사에 불려 나온 연예인들의 진술의 신빙성도 문제이거니와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범죄성을 입증한 물증을 잡기 어려웠다. 정권으로서도 한바탕 보도했기 때문에 내심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민정권에서 행해진 연예계 사정이라는 클래식한 레파토리는, 지난 2002년 국민의 정부에서도 다시 한 번 그대로 재현된 바 있다. 사정을 시작한 동기도 풀빵처럼 똑같았고, 진행과정과 결말도 대략 그저 그렇게 비슷하게 났다. 아무렴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국정원과 연예계가 관계되는 얘기를 하나만 더 소개하겠다. 다름 아니라, 우리 나라의 인터넷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건으로 알려진 소위, 『Ο양의 비디오』사건에 얽힌 얘기다. 비록 내가 직접 확인한 일은 아니었지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대충 다음과 같다.

국정원이 이 사건에 개입한 사연은 좀 우스꽝스럽다. 비디오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종마처럼 잘 빠진, 남자 배우 H 씨는 마약 중독자였다고 한다. 그는 Ο양이 뜨기 전에 매니저 겸 애인이었는데, 훗날을 대비하여 문제의 비디오를 찍어 두었다고 한다.

한참 후, 그는양과 헤어진 후 돈이 궁해지자, 이 비디오를 들고 한국의 모 대형교회 당회장의 아들인 J 모 씨를 협박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Ο양이 J 씨의 애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박을 당한 J 씨는 처음 한 두 차례는 돈을 줄 수 밖에 없었지만, 계속된 협박에는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이즈음 이종찬 원장은 J 씨가 운영하는 모 일간지를 담당하는 윤 모 수집관에게 이 비디오의 원본을 입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 원장과 J 씨의 부친인 당회장과는 평소 돈독한 친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수집관이 비디오 원본을 입수한 때에는 이미 유포를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충 그렇고 그런 스토리였다. 

나는 대공정책실 부속실에서 일 년 정도 일하고 나니, “볼 것, 안 볼 것 다 보았다.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부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긴장된 부속실 생활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많이 피폐해 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을 핑계로 가정에도 너무 소홀해 진 것 같았다. 나는 좀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선배들은 한결 같이, “그 자리는 오래 있을 데가 못 된다고 충고해 줬다. 메모 보좌관이었던 배 모 보좌관은, “이젠 국내 부서는 사양산업이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외 부서로 옮겨라라며 진심으로 충고해 주셨다. 고민이 되었다.

이즈음 나는, ‘나의 성격이 국내 부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정성Ο씨나 공운Ο씨 같은 훌륭한(?) 수집관이 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하루라도 빨리 해외 연수도 가고 싶었다. 연수를 가려면 아무래도 국내 부서보다는 해외 부서로 옮기는 것이 유리했다

생각 끝에 오 실장에게, “부속실 일을 그만 두고 싶습니다. 해외 부서로 좀 보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오 실장은 별다른 군말 없이,“원하는 부서로 보내주마고 승낙해 주었다.



얼마 전 이 유명한 연예인은 자살로써사연 많은인생을 정리하고 전설이 되었다.

당시 모 일간지 담당 수집관은 내가 신문과에서 부임했을 때 행정관이었던 윤 모 선배였다.

지난 2005년 필자가 미림팀의 존재를 제보한 후, 우연하게도 유독 이 일간지가 전직 직원으로서의 필자의 도덕성에 대해 문제를 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