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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5. 문민정권의 뒤안길 II

20. “안기부가 정무수석 직속이냐?”

돌이켜보면, 대공정책실 보좌원으로 1년간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보고 들었다. 권력의 턱 밑에서 일하다 보니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다. 장막 뒤편에서 정치 권력이 지어 보이는 음흉한 미소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무대 뒤편에서 정치 권력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의 관계가 깨어지는 과정은 실시간으로 중계하듯이 지켜 보았다. 초등학교 어린애들 다툼 같아 보였다. 아니 그보다도 못해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사건사고가 봇물 터진 듯 일어나고, 사회 각계 각층의 집단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했을 때, 아마추어 문민정부가 갈팡질팡 허둥거리던 장면도 가까이서 관찰하였다.

정치와 언론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기이한 공생관계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신문에 보도된 수 많은 사건의 행간에는 보도되지 않는 은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방송에 보도되는 수 많은 사건의 뒷면에도 방영되지 않는 깊숙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추락한 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연예계 사정이라는 칼을 빼 들었을 때에는, 연예계라는 별천지의 치마 속 풍경을 흘깃 들어다 보는 행운(?)도 누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저열한 인간들인 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형편 없는 곳인 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사회는 정치권, 언론계뿐 아니라, 법조계, 종교계, 학계, 재계,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비유해 말하자면, 내가 본 우리 사회는 수술하려고 집도하려다가 상태가 너무 심하여 다시 봉합해야 하는, 그런 실정이었다. 비록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내가 본 문민정권의 뒤안길과, 우리 사회의 뒷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정보기관에 대한 불신이 대단했다. 그는 과거 야당 시절에,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로부터 감시 당하고 구박 받았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듯 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정보기관을 신뢰하고 감싸 주어야 했는데, 그는 체질적으로 그러질 못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정보기관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했다. 피는 고사하고 먼지도 묻히기 싫어했다.

문민정권 초기, 김덕 부장이 매주 목요일 오전에 청와대로 주례보고를 갔다. 그런데, 심심찮게 대통령이 진지하게 보고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YS가 보고서 읽는 걸 싫어한다는 말도 들렸다. 어떤 때에는, “부장이 보고하러 들어 갔다가 보고서를 그냥 책상 위에 놓고 왔다라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대통령이 챙겨보지 않는 보고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각 수석실에서는, 대충 보고서 제목만 보고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개 이런 과정에서 보안사고가 터졌다. 이런 측면에서 김영삼의 청와대와, 노무현의 청와대는 많이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챙기지 않다 보니 문민정권에서는 정보가 왜곡되어 유통되는 폐단이 생겼다. 다시 말해, 보고서가 엉뚱한 곳으로 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쏠렸고 김현철이라는 사인(私人)에게 흘러 들어 갔다. 문민정권 내내 안기부의 국내 부서에서는, “안기부가 정무수석 직속이다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돌았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안기부의 정무수석 예속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내가 오 실장의 부속실에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보내는 주간 정치권 동향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내부 보안규정을 위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첩보 수집부서인 대공정책실에서는 정보 보고서를 만들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문제에 대한 모든 정보 보고서는 기획판단국의 소관이었다. 보통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칙대로라면, 감찰실에서 보안 조사를 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감찰실에서는 뻔히 알면서도 묵인했다.

당시에는 매일 오후 2시가 첩보보고 마감시간이었다. 요즘이야 수집관이 컴퓨터로 첩보를 작성하여 전산망을 이용하여 분석데스크로 송고 하겠지만, 내가 대정실에 근무하던 시절만해도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첩보 보고서도 손으로 작성했다. 매일 각 과의 행정관들이 첩보를 수거하여 행정과에 가져 오면, 행정과 기획팀에서 커다란 가방에 담아 기획판단국으로 배달하곤 했다. 부속실에서는 행정과에다, “매일 첩보 가방이 기판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속실부터 들르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 날 수집된 첩보 중에서 가장쓸만하고 똘똘한것들만 따로 골라내어 복사했다. 주로 정치인들의 동향과 가십성 첩보만 가려 내었다. 이렇게 하루에 몇 건만 추려내어도 일주일이면 수십 건의 첩보가 쌓였다. 골라낸 첩보를 토요일 오후에 요약하여 보고서 형태로 정리했다. 보통 한 페이지에 두 건씩 해서 20 내지 3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었다.

원래 이 작업은 오 실장이 이용О 보좌관에게 시킨 일이었는데, 그는 보고서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그랬는지, 그 일을 자꾸 내게 미루었다. 그래서, 정보분석 경험도 전혀 없었던 내가, 이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정보기관에 갓 입사한 말단 직원이, 그렇게 민감함 정보를 취급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오정소 실장이라는 막강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에 내가 대정실을 떠난 후에는, 그 일이 정치과 기획반으로 넘어 갔다고 한다.  

부속실에서 작성하던 정치권 주간 동향 보고서 이외에, 방송과에서는 언론계 주간 동향 보고서를 만들었다. 서진О 방송과 기획관이 매주 토요일 오후에 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사실, 언론권 동향 보고서는 신문과에서 맡아야 제격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재О 방송과장이 먼저 그 일을 차지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과장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겠다. 그도 내가 국정원에서 본 별종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에 집을 두고 서울에서 호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회사 일로 가정까지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일에 대한 열정과 아이디어는 풍부했지만, 인간성은 별로였다. 그는 윗사람에게는 확실히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군림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부산지부에서 정보과장을 오래 했지만, 사실은 전라도 사람이었다. 출신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우리는 은어로얼룩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전형적인 얼룩이였다. 언론계 주간 동향 보고서 덕택에, 그는 김영삼 정권에서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했다.

정권이 바뀌자 그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그는 대구지부장으로 영전하여, 소위 『밀라노 프로젝트』 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구 지역의 섬유산업을 발전시키는 방안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 때 이태리의 섬유 패션 산업과 협력하는, 다양한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구상되어 추진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기반이었던 부산지부장을 지냈다.

그가 부산지부장 시절에 일본의 혼마 골프채를 밀수하는 데 국정원 직원이 연루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터지자, 그는 전 직원들을 소집하여 밤샘 근무를 시키고 윤리헌장을 외우게 하는 등 코미디 같은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우연히 부산에 들르는 일이 있어 부산지부의 그런 동향을 곁눈질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국내 정보 부서의 부서장이 되기를 원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이용О 보좌관이 우리 부속실이 작성한 정치권 주간 동향 보고서와, 방송과가 정리한 언론계 주간 동향 보고서를 들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 두 야매보고서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이원종 수석은 정치권과 언론계 동향 보고서를 양손에 쥐고 정치권과 언론계를 완벽하게 쥐락펴락했다. 이들 보고서 덕택에 그는 정치권과 언론계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꿰뚫었다. 신문 기자들은, 이 수석이 어떻게 그렇게 언론계 동향을 잘 아는지, 자신들이 몰래 장관들과 만나는 사실을 이 수석이 어떻게 그렇게 실시간으로 파악하는지를 신통해 했다.

나는 가끔 내 자신이 내가 쓴 야매 보고서의 위력을 보고 놀랄 때가 있었다. 가령, 장관급 인사의 비리에 대해 보고서를 올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이 날라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가 있었다. 나는 ‘7급 공무원에 불과한 내가 장관의 모가지를 자르는 일을 해도 괜찮은 건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러다,‘내가 너무 교만해 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속실에 근무하는 덕분에 매일 수천 만원 어치의 정보를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이런 짓은 너무 오래할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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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향이 많이 비슷하다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