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보기관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아마 1992년 어느 여름날 오후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종로 5가 부근 어느 고층 건물의 – 지금은 그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지만 - 맨 꼭대기 층인 13층에 있던 안기부[1]의 물색팀 사무실로 내발로 직접 찾아 갔었다. 언젠가 나보다 먼저 안기부에 입사했던 대학 친구 ○국진이에게서 안기부의 물색팀 사무실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사무실은 안기부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회사 바깥에서 운영하는 이른바 안가(안전가옥) 중의 하나 였다.
내가 처음 만난 안기부 직원은 아마 이종○ 선배였던 것 같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발로 찾아 오는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나를 보더니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서울법대생이라고 밝히자 그는 더욱 의외라는 인상을 지었다. 아마 그때까지는 제발로 정보기관에 입사하겠다고 걸어 들어오는 서울법대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종○ 선배는 처음 보는 지원자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나에게 정보기관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 지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그는, “외교는 앞문이고, 정보는 뒷문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어리둥절해 한다고 생각했던지,“외교관들이 폼 잡으면서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고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은 성의 없는 글씨였지만, 입사지원서를 썼다. 추천인을 기입하는 난은 공란으로 비워 두었다. 나는 왜 그런 난이 있어야 하는 지조차 몰랐다. 다른 동기들은 하다 못해 학과장의 추천이라도 받아서 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입사목적 난에는,“조국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썼다.
요즘은 국정원에 입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정보기관이 취업 지망생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해마다 입사경쟁이 수 백대 일이라는 보도를 듣는다. 그래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평소 학점관리는 물론이고, 수험 준비를 위해 스터디 그룹이 생기고, 국정원 입사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도 등장한 모양이다. 국정원 입사시험을 위해 마치 고시공부 하듯이 준비하는 취업 지망생이 늘어 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쉬리』,『아이리스』, 『7급 공무원』 등 정보기관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이러한 인기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동안 국정원이 나름대로 이미지 쇄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거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정원이 다른 공무원직에 비해 보수가 괜찮다는 입소문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아무튼, 90년대 말 경제난 이후 취업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런 추세가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정보기관이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3] 그 때는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저 “무서운 기관” 정도로 인식되었다. 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나 가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응시인원 자체가 많지 않았고, 입사경쟁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서울대 졸업생이면 어렵지 않게 안기부에 입사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학점 때문에 서울대 졸업생이 서류전형에서 탈락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서울대 졸업생이면 학점이 적당히 나빠도 서류전형에는 무사히 통과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입사한 후 몇 년이 지나니,“서울 법대생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두어 달 후에 입사시험이 있었다. 강남의 어느 중학교에서 일요일에 시험을 봤다. 나는 입사 시험준비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떨어져서 창피를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시험이라면 이골이 난 몸이었기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사실은, 뭔가 준비하고 싶어도 시중에 별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시험과목은 영어와 국어, 도덕, 국사 등이었다. 영어 등은 선다형 객관식 문제였고, 국사는 논술시험이었다. 객관식 문제는 거의 학력고사 수준이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논술문제는, 두 문제 중에 한 문제를 골라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구한말과 현재의 시대상황을 비교 설명하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논술하라”는 문제에 대해 썼다. 서론으로 주변 4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안보현실에 대해 조금 개괄하고, “자주적이고 열린 자세로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평이하고 밋밋한 답안지였다.
안기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줄임말로, 국가정보원의 옛 명칭이다.
그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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