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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10. 국정원을 퇴사하고서

48. 북풍, 세풍, 안풍

김대중 정권 초기에 일어난 『북풍사건』은 좀 언급할 가치가 있을 법하다. 북풍사건은 당시 권력을 잡은 측의 일방적인 매도로 세상에 너무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당시의 사건들을 하나씩 복기해 보면 북풍사건이란 것이, “김대중 정권에서 주장한 것처럼 허무맹랑한 정치공작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북풍사건이란 지난 1997, 안기부가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대선판에 북한을 끌어 들이려 시도했던 일련의 정치공작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른바 윤홍준 기자회견 사건, 오익제·김병식 편지 사건, 총풍사건 등이 북풍사건의 주요 줄거리였다. 안기부의 공작이 있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아무런 배경이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윤홍준 기자회견 사건이란, 97 12월 선거 바로 직전에 젊은 재미 교포 사업가인 윤홍준이, 안기부의 사주를 받아 대선 직전 북경, 동경, 서울에서, “김대중은 72년 선거부터 김일성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지원받았고, 현재도 북한과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진 것을 말한다. 대선을 바로 코 앞에 둔 시점에 민감한 시점이라 우리 언론들은 윤씨의 이러한 주장을 성의 있게 보도해 주지 않았다.

젊은 대북 사업가였던 윤홍준은, 김정남의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김대중과 김일성 부자 간의 여러 커넥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안기부의 대북 협조자로 일하면서 조선족 교포 출신의 대북 사업가였던, “허동웅이라는 인물이 간첩 혐의가 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 또한 그는 김대중의 측근이자 국민회의 조직국장이었던, 조만진이라는 인물이 여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면서 김대중 측과 북측의 은밀한 거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2] 그는 이러한 일들을 안기부의 공작관에게 보고하였다.

비록 대선 바로 직전에, 대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공개한 내용이기는 하나, 내용 자체가 조작되거나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정권 교체 직후 윤홍준은 멋모르고 입국했다가 체포되었다. 당시 수사 당국은 윤홍준의 폭로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조사하지 않고, 다만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죄목으로 선거법 위반을 적용하여 그를 구속했다. 그는 유죄를 선고 받고 1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오익제 편지 사건이란, 지난 1997년 천도교 수장(교령)이었던 오익제가 자진 월북한 후, 무슨 연유에서인지 민감한 시기에 김대중에게 편지를 보내온 것을 안기부가 입수한 사건이었다. 아마도 북측은 편지가 우리 정보당국에 입수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편지를 내려 보냈다. 편지 내용에는 김대중의 대북 커넥션을 의심할만한 정황이 들어 있었다.

당시 안기부는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편지를 보내온 북한의 의도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오익제는, 아니 북한 정보기관은, 걸릴 줄 뻔히 알면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러한 일을 공개해야 하는가에 대해 안기부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안기부에서는 편지를 입수하고 한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선거 직전에 가서야 TV에 공개하고 부랴부랴 여론화를 시도했다. 김대중 측에서는 안기부의 조작극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공작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다. 김대중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오익제의 편지가 조작극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공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안기부가 나서서 오익제의 월북을 주선한 것도 아니고, 편지를 보내도록 유도한 것도 아니었다. 편지내용을 조작한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편지가 온 사실을 공개한 것뿐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언론에 보도하도록 영향력을 행사를 시도한 것 정도였다.

김병식 편지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 편지도 북측이 우리의 대선판을 흔들려고 고의로 편지를 내려 보낸 것이었다. 김병식은 이 편지를 재미교포 목사인 김영훈 목사와 한때 김대중의 충복이었던 임춘원 전 의원을 통해 김대중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서 그는 고의적으로 김일성 수령의 김대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언급했다. 편지의 내용 중에는, 김일성과 김대중 간의 돈 거래에 관한 언급도 있었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란 대북 사업가 장석중과 한성기,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이 공모하여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나라당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측에게 휴전선에서 도발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그 후 지리한 재판과정을 통해 실체가 없고, 고문과 강압으로 인해 조작된 사건으로 판명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한나라당을 확실히 누르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사건을 확대시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수사국 요원들이 무리한 조사를 했다.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언을 듣기 위해 북한의 공작원이었던 최인수라는 자를 중국으로부터 몰래 유인해 들어왔다. 국정원은 그를 감금하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이에 최인수는 감시가 소홀한 야밤에 도주하여 중앙일보에 뛰어 들어갔다. 국정원으로서는 참담하게 망신스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 최인수는 중국으로 추방되어 북한으로 소환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그의 최후는 불문가지이다. 최인수 사건의 여파로 중국에 심어놓았던 국정원의 흑색 공작망이 중국의 안전부에 의해 철저히 괴멸되었다. 이른바 백곰사건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은 국정원의 공작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3] 그 후 국정원은 오랫 동안 중국 내 대북공작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처럼, 이른바 북풍사건은 김대중 정권이 정권을 잡은 후, 안기부에 대해 악랄하게 정치적인 보복을 가한 사건이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직 간부들을 고문하는 바람에, 국정원 조직 자체가 완전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언젠가는 반드시 전모가 다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지 않아 그런 날이 반드시 오기를 빈다. 

김대중 정권이 정치보복 차원에서 국정원을 동원한 사례는 북풍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위 『세풍사건』과 『안풍사건』이라는 것도, 유사한 바람몰이였다. 이른바 세풍사건의 주요 골자는, “1997년 대선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20 여개 기업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하여 이회창 후보 진영에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이석희 국세청 차장은 선거가 끝나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김대중 정권 초기에 국정원은 한동안 미국 내 파견관들이 총동원하여 이석희의 행방을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회창이라는 정적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석희라는 뇌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4] 그러나, 이 사건도, “김대중 정권이 사건을 과도하게 부풀려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안풍사건이란, “김기섭 기조실장이 안기부 내에서 불법 자금을 조성하여, 지난 1996년 총선자금으로 사용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오랜 동안 법정에서의 지리한 공방 끝에 정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미제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다. 짐작컨데, 이 돈은 김영삼 정권이 1992년 대선에서 쓰고 남은 자금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연유로 쓰고 남은 정치자금을 안기부의 기조실장이 관리하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강삼재 총장이 김기섭 기조실장에게서 이 돈을 인계 받아, 1996년에 총선자금으로 사용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이전에 불법으로 선거자금을 조성한 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김대중 정권이 주장했던 것처럼, 안기부 자금을 불법으로 유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도 김대중 정권이 과장하고 왜곡하여 정치보복에 이용한 경우였다.        

나는 우선 공개자료부터 살펴보았다. 나는 신동아가 보도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검찰 신문 내용을 발췌한 기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5] 신동아가 보도한 검찰의 신문조서에서는 안기부가 윤홍준이라는 대북사업가를 이용하여 『상황사업』과 『고인돌사업』을 벌인 경위와, 권 부장이 윤홍준의 기자회견에 직접 개입한 『아말렉공작』의 경위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윤홍준의 담당관이었던 이재Ο 전 직원을 수소문했다. 그가 윤홍준의 기자회견을 기획한 공작 담당관이었기 때문에 뭔가를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Ο 직원은 윤홍준 기자회견으로 인해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종국에는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쫓겨 난 사람이었다. 그는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다시 이 같은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그대로 수행하겠다고 용기 있게 발언했었다.

나는 분당의 어느 곱창집 등에서 그를 몇 차례 만났다. 나는 내가 왜 북풍공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윤홍준 기자회견의 개요와 공작원이었던 윤홍준에 대해 물어 보았다. 소주 몇 잔을 기울이자마자 그는 허심탄회하게 그 간의 일들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재Ο 씨는,“윤홍준 기자회견은 대선 바로 직전에 권영해 부장의 지시로 급조된 것이지만, 기자회견 내용은 진실한 것이다. 윤홍준은 믿을만한 공작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윤홍준은 실제 김정남과 가까운 사이며, 김정일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미국에 가면 윤홍준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동웅은 2007 12월 북경에서 자신의 간첩 혐의를 강력 부인하면서, 자신이 북풍사건에 휘말리게 된 경위를 밝힌 북풍사건이라는 책자를 출판한 바 있다.  

조만진은 국정원의 대공수사 부서에서도 간첩 혐의를 두고 오랫동안 주시해 오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장관급이 정부산하기관의 기관장을 역임했다.

최인수 사건의 자세한 경과는 동아일보사 간, 이정훈 저 “공작” 참조.

이석희 씨는 김대중 정권이 지난 후 미국에서 송환되어 징역 1년여의 유죄선고를 받았다.

신동아 98년 6월 호, “윤홍준 기자회견 조작 아니다” 제하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