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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에 남을 인물 양준용이라는 분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LA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원로 언론인 중의 한 분이다. 미국 최대의 한인 방송사인 LA 라디오코리아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이 방송의 시사좌담 “토요 스페셜”에 단골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다. “토요 스페셜”은 최영호 부회장이 직접 진행하는 라디오코리아의 간판 프로그램인데, 미국 동포 사회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지난 2010년 9월 4일, 양준용 고문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간 김대중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는 주제로 대담한 적이 있다. 그 전주, 그러니까 2010년 8월 마지막 주에는, 마침 필자가 동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다. 그 때 필자는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라는 책의 출판과 관련된 얘기를 주로 했었다. 양 고.. 더보기
3. 13전 14기의 신화 “나에게는 소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벨평화상을 타는 것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김대중은 사석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지난 1971년 그가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는 득표력을 보였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그저 깜짝 스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후, 해외를 떠돌면서 반유신 활동을 하다가, 1973년 8월 동경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납치되면서부터 일약 국제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로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택에 그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에서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국제 여론에 힘입어 미국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의 길고 긴 노벨평화상 도.. 더보기
RadioKorea Weekend Special 2010.8.28. LA 라디오코리아 다시듣기 입니다. 더보기
RadioKorea Weekend Sprcial 2008.4.18. LA 라디아코리아 시사좌담 녹음파일입니다 더보기
2. 엇갈리는 반응들 수상 발표가 있은 다음날 아침, 청와대에서는 작지만 뜻깊은 행사가 거행되었다. 다음은 월간중앙이 보도한 내용.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발표된 뒤 정확히 13시간이 지난 10월14일 오전 9시. 청와대 녹지원에서 집무실로 향하는 도로 양켠에는 청와대 비서실, 경호실 직원 300여명이 도열해 있었다. 이날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대통령님을 축하해 드리는 자리에 전 직원은 참가하라”는 구내방송을 듣고서였다. 아침 9시20분경, 출근하는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1호차가 관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직원들의 도열 행렬이 시작되는 녹지원 가까이에서 이내 멈춰서고 김대중 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박수가 쏟아지고 눈길이 마주친 직원들의 목례가 이어졌고, 김대통.. 더보기
1. 수상자 “김대융”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여, 김대융 대통령에게 2000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수십년간 독재정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오랜 기간 망명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그 나라의 민주지도자로 부상했다. 그가1997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은 전 세계 민주국가의 대열에 결정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민주적인 정부를 강화하고 나라 안의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 대통령은 또한 보편적 인권의 주도적인 수호자로서, 강력한 도덕적인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 왔다. 그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동티모르.. 더보기
기가 막힌다... 어느 고등학교 전교조 교사의 막장 정치 선동!!! 최근 경기도 어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전교조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억장이 무너지네요... 더보기
프롤로그 - 마침내 망명이다 일년전 이맘때, 2011년 12월 11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은 오랫 동안 끌어오던 망명 문제가 최종 마무리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미 이민국 담당 검사와 8년째 씨름 중이었데, 마침내 그 날, 미 필라델피아 미민 법원의 찰스 허니맨 판사로부터 “정치적 망명을 허락한다.”는 최종 판결을 통보 받았다. 그 판결 덕택에, 나의 가족은 비로소 “강제추방”이라는 해묵은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동시에 나를 송환시켜 진실의 입을 틀어 막으려던 국정원의 오랜 노력도 결국 수포로 돌아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원은 나의 망명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나의 주위를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2003년,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반역적인 대북송금 문제, 임동원의 간첩 혐의, 그리고 김대중.. 더보기
Book Cover 2 더보기
제 사진 한 장 올립니다 2012.3. 펜실바니아 주 의사당 건물 앞에서, 더보기
김한정의 오슬로 출장 지원 지시 하달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한정 청와대제1부속실장은 스톨셋 주교를 만나기 위해 오슬로에 갔다. 본 전문은 오슬로 출장을 떠나는 김한정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한 국정원 본부의 하달 전문이다. 전문에서 "김교수"는 김한정을 지칭한다. 더보기
분데빅 노르웨이 총리 방한 지원 2000.8.15.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렸다. 김한정은 전직 노르웨이 총리를 방한 초청하여 비밀리에 이산가족 상봉 현장으로 안내했다. 안내를 맡은 담당자는 국정원 동구과 박노용 북구팀장이었다. 더보기
한영우 방한 관련 스웨덴 전문 2000년2월, 한영우가 김한정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마이클 슐만 노벨재단 이사장이 삼성과 백주년기념전시회 관련 재정지원을 협의 차 방한하는 데 동행한 것이다. 본 문건은 한영우의 방한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스웨덴의 박종재 파견관이 현지의 노벨상 공작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는 국장 "친전" 전문이다. 전문에서 "한상철"은 한영우의 암호명이다. 더보기
금년도 정세 전망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국정원이 김대중에 보고한 보고서이다. 문건은 금년도(2000년) 노벨상 전망에 대한 종합 분석 보고서인데, 별다른 일이 없을 경우 금년도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 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더보기
NB 사업 관련 보고 노벨상 공작과 관련 국정원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임. 1999년말, 노벨평화상위원회 임원진 개편과 2000년 초 스웨덴 외무차관의 방북, 그리고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이병춘의 인사 문제 등 당시의 현안에 대해 요약 보고하고 있슴. 특히 이 보고서는, 1999년 초 김한정 책임하에 스톨셋 주교를 방한 초청했고, 이는 절대 보안이 요구되는 사항이라고 경고하고 있슴. 더보기
일베 아저씨들 저 김기삼 맞습니다. 인증인지 뭔지 자꾸 그런 걸 요구하시는데,,,제가 올린 글 맞으니 이쯤하면 안될까요? 더보기
주인공 소개 우선, "NP 프로젝트"의 주인공부터 소개하지요. 이름은 김한정이라고 하고요, 아래 사진 별표 안의 인물입니다. 김대중 노벨상 공작의 핵심 인물이었고요, 1999년 12월부터 청와대 부속실장과 동교동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김대중의 "문고리 권력"을 잡았던 사람이죠. 9월 24일, 문재인의 이끌고 가서 이희호에게 문안인사를 시키더니, 그후부턴 문재인의 수행실장을 맡았군요. 11월 21일, 안철수와의 단일화 토론에도 참석한 걸로 보아, 안철수를 주저 앉히는 데도 모종의 핵심 역할을 한 걸로 보여지고요. 더보기
BOOK COVER: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더보기
'NP 프로젝트' 연재를 시작하며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망명을 허락 받은 지 꼭 1 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동안 성원해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1 주년을 기념하여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을 설명하는 연재물을 제 블로그에 시작하려 합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저지르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미국에서 김기삼 배. 더보기
English Articles 저에 대해 보도한 영문 기사들을 모아서 소개합니다. Here are several English articles that feature my case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