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보기관에 근무하면서 김정일이 인민군대에게, “일주일은 너무 길다. 3일만에 끝내도록 하라”라고 지시하는 첩보를 본 적이 있다. 무슨 소린고 하니, 북괴군이 대한민국의 점령하는 데 일주일씩이나 걸리지 말고 “사흘만에 해치울 수 있도록 작전을 짜라”는 말이다. 실제로 김정일의 계산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는, “툭 건드리면 넘어가고, 훅 불어 버리면 날아갈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가 뒷골목의 깡패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이렇게 대한민국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깔려 있다.
북한이 지독한 경제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우습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대칭적 전력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제는 전통적인 군비경쟁으로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재래식 무력보다는 뭔가 특별한 군사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김정일이 생각하고 있는 전술은, 소위 ABC (핵, 생물학, 화학) 무기를 장전한 중 장거리 미사일을 동원하여 미국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남침 땅굴을 통해 일거에 대규모의 특수군을 침투시켜 속전속결 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제까지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의 남침땅굴이 네 차례 발견되었다. 그런데, 최근 20 여 년간 땅굴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없다. 김정일이 땅굴 건설을 중단한 것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럼 왜 발견되지 않았는가? 땅굴은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난 시절 땅굴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그것은 극히 운이 좋았거나 제보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제 3 땅굴과 제 4 땅굴은 땅굴 현장에서 일하던 북한군 병사가 귀순하여, 땅굴 입구의 위치를 정확하게 제보해 주었다. 제 3 땅굴의 제보자는 땅굴 수색을 위해 휴전선 일대를 뒤지다가 지뢰를 밟고 불구자가 되기도 했다. 제 4 땅굴을 제보한 병사는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2000년 경에 다시 북으로 도망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북한군이 20 여 개의 장거리 땅굴을 굴착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남침 땅굴의 출구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어디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땅굴의 작업내용을 상세히 아는 자가 귀순해 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땅굴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땅굴에 관한한 세계 최고다. 지난 몇 십년간 그들이 땅굴 작업을 계속했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이미 우리나라의 땅 밑은 그들에게 점령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생각만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8년 8월 말, 북한은 대포동 1호라고 불리는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6년도에는 더욱 개량된 형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뿐만 아니라 노동 1호 노동 2호라고 불리는 중거리 미사일을 대량 생산하여 이미 수백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 김정일이 어려운 경제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중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것은, 서 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군사기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유사시 미국이 한반도의 무력충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협박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당초 김일성은 미사일 개발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를 우려하여 미사일 개발에 미온적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중거리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을 개발해봐야 주변국가들만 자극할 뿐, 통일전쟁에는 실질적으로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우리는 미사일을 개발할 능력만 갖추면 된다. 미사일에 들어갈 화약이 있으면 그것으로 탄알을 더 많이 만들어서 실질적인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훈시하였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처음부터 미사일 개발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군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지난 1981년 초부터 구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모방 설계하면서 미사일 연구개발을 시작하였다. 김정일이 미사일 개발에 나서게 된 동기는 소련과 중국의 군사지원 중단 때문이었다. 김정일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면 대일 대미 공갈용, 테러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노력 덕택에 북한은 이제 미, 러, 중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의 가공할만한 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2002년 10월 켈리 부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자신들이 고농축 우라늄을 개발하고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단행했다. 첫번째 시험에서는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두번째 시험에서는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두 차례의 핵실험은 모두 플루토늄 원자탄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핵무기 전문가가 아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핵무기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까지 개발된 원자무기는 세 가지이다. 우라늄폭탄, 플루토늄폭탄, 수소폭탄이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핵 분열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고, 수소폭탄은 수소 원자의 핵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원자가 분열하거나 융합될 때에는 미량의 질량 손실이 있게 되는데, 이 질량의 손실은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E=MC2라는 공식에 따라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은 우라늄 원자탄이었다. 이것은 길쭉한 형태로 생겼기 때문에 “리틀보이”(어린애) 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은 플루토늄 원자탄이었다. 이것은 모양이 공처럼 둥글게 생겼기 때문에 별명이 “팻맨”(뚱뚱이)이 되었다. 이제까지 수소폭탄이 실제 사용된 적은 없지만, 1950년대에 실험이 성공한 이래 미국과 러시아는 다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라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92개의 원소 가운데 가장 무거운 원소다. 우라늄의 원자번호는 92번인데, 이는 원자 핵 속 양성자의 숫자가 92개라는 말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라늄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합한 질량수가 234개인 것과, 235인 것, 그리고 238인 것 등 세 종류가 있다. 이를 동위원소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핵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우라늄 235이다. 자연계에 있는 99% 이상의 우라늄은 238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라늄 235는 약 0.7% 정도, 우라늄 234는 극소 미량 존재한다. 원자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라늄 238에서 우라늄 235를 추출해내야 한다. 이 과정을 농축이라고 한다.
우라늄을 농축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원심분리법다. 이는 우라늄 동위원소간의 미세한 질량의 차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원심분리기는 1분에 수만 회를 회전하는 초정밀기기다. 우라늄 원석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고속으로 회전시키면 원심력으로 인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238이 바깥으로 모이고 무게가 가벼운 235가 안쪽에 몰린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할 수 있다. 이를 속칭 “옐로우 케이크”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라늄 235의 농도가 90% 이상이 되면 무기급 우라늄으로 분류한다.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농축 우라늄을 일정 정도 이상을 모아야 한다. 이를 임계질량이라고 한다. 보통 고농축 우라늄 15Kg 정도 이상이 임계질량이다. 수천기의 원심분리기를 일년간 가동하면 임계질량에 해당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고농축 우라늄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핵분열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우라늄 원자탄은 특별한 기폭장치가 필요 없다. 리틀 보이는 평범한 기폭장치로 격발시켰다.
우라늄 농축과정은 비교적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량의 특수 알루미늄 합금을 구입해야 한다. 원심분리기를 24시간 가동하기 위해서는 전기도 아주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은 지하공장이나 좁은 장소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은닉하기가 용이하다. 또한 우라늄 농축은 원심분리기의 설계도면만 구하기만 하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니라고 한다.
이에 비해 플루토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가 아니다. 원자번호 94번인 플루토늄은 일반적으로 우라늄의 핵폐기물에서 추출한다. 즉, 우라늄 원자로만 있으면 플루토늄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북한이 영변에 5 메가왓트 짜리 실험용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이유가, 플루토늄을 얻기 위한 목적이다. 그 동안 북한은 영변 시험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원자탄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루토늄 원자탄을 만드는 데는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우라늄 원자로를 건설해야 한다. 우라늄 원자로는 당연히 은닉이 용이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게다가, 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한 국가들은 사용 후 핵폐기물의 처리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플루토늄은 안정적인 원소이기 때문에 핵분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아주 큰 외부충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플루토늄 원자탄은 고폭장치라는 특수한 기폭장치가 필수적이다. 기폭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플루토늄 기폭장치는 백만분의 일초 단위의 초정밀 연쇄 폭발을 일으켜야 한다. 앞서 말한 “팻맨”이 공모양의 형태로 제작된 것은, 기폭장치가 폭약(플루토늄) 주변을 구형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론상 원구형 기폭장치가 가장 큰 기폭력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평북 용덕동이란 곳에서 줄기차게 고폭장치 실험을 반복 실시해 왔다. 내가 국정원에 근무하던 2000년에, 북한은 이미 130여 회 이상 고폭실험을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폭장치의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북한의 1,2차 핵실험이 성공함으로써, 그들의 고폭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북한은 또한 지난 1990년대 말경에, 파키스탄의 칸 연구소로부터 원심분리기의 도면과 우라늄 농축기술을 전수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 북한과 파키스탄간의 죽음의 거래는 양자의 이익이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 우라늄 농축기술을 얻는 대가로 북한은 파키스탄에게 중거리 미사일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파키스탄이 자랑하는 가우리 미사일은 실제로 북한의 노동미사일의 복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이 얼마만큼의 고농축 우라늄을 획득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쯤이면 충분한 량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어느 산속 지하 동굴 깊숙한 곳에서는 원심분리기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포기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는 영원히 김정일의 핵 공갈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우리도 우라늄을 농축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우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2004.2.5. 자 “칸 박사, 핵기술 유출 시인” 제하 기사 및 주간조선 2006.10.23 자 “우라늄 핵무기는 북한 최후의 카드” 제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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