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노벨상 공작을 직접 추진한 사람은 김한정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이종찬 원장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비밀리에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그는 외국에도 다녀오기도 하고, 매일 국내의 인사들과도 빈번하게 접촉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데 조준오가 그의 조수 노릇을 했다.
김한정은 정열적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국정원 내의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랑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아무도 그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오해를 사기 마련이었다. 그가 기본적으로 기존의 국정원 직원들을 불신하는데다, 비밀스럽게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랬다.
99년 초, 김한정은 햇볕정책을 홍보하는 대규모 국제 세미나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실무를 담당해야 할 전략국 등 관련 부서에서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원장으로부터, “잘 협조해 주라”를 지시는 받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하소연했다. 당연히 기획 책임자인 김한정에게 비난이 돌아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세미나는 결국 취소되었다.
한 번은 공항에서 근무하던 송경Ο 훈육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대뜸, “김한정이란 놈이 누구냐?”하고 물었다. 내가“무슨 일입니까?”하고 되묻자, 그는“김한정이가 외국 손님을 자주 초청해 오는데, 그 때마다 굳이 더블 도어를 이용하게 해 달라고 졸라서 귀찮아 죽겠다”고 했다. 더불 도어는 국빈급에게나 개방하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훈육관에게,“그냥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김한정은 사무실에서도 자신의 상관인 대외협력보좌관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종Ο 대외협력보좌관은 노벨상 작업에 지나치게 신중했다. 단순히 소극적인 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몸을 사렸다. 아마 그가 노벨상 공작이 가지는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김한정은 그런 그의 태도를 몹시나 못마땅해 했다.
내가 대외협력보좌관실에 전입하기 직전, 김한정은 이 보좌관과 “대판 싸웠다”고 했다. 김한정은 이 보좌관에게,“누가 회사를 먼저 나가는 지 두고 봅시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국정원 문화로는 일개 사무관이 부서장에게 감히 대들 수가 없다. 상하관계가 엄격한 국정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김한정이 국장급(?) 사무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에 김한정이 먼저 회사를 떴지만, 이 보좌관도 결국 승진을 못하고 옷을 벗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원의 전라도 출신 간부 중에서 승진을 못하고 옷을 벗은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그가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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