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교육은 출퇴근 교육이었다. 전반기에 비해 훨씬 여유가 있었다. 반도 재조정되었다. 각자 보직하게 될 업무 위주로 소규모 반으로 재편성 되었다. 우리들은 국내정보반, 해외정보반, 북한정보반, 공작반, 수사반, 심리전반, 통신반 등 각각 세부 전문 직렬 별로 나누어졌다.
나는 국내정보반에 배속되었다. 전반기 교육을 마칠 즈음에 훈육관과 진로 상담이 있었는데, 나는 “국내정보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우리 반은 남녀 합해 모두 15명이었다.
후반기 교육은 주로 현장실습 위주의 교육이었다. 예를 들면, 면담유출 기법을 실습하기 위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인사를 접촉하여 특정한 정보를 알아내 오는 과제가 부여되기도 했다. 그 밖에 미행 감시하는 요령이라든가, 공작원을 접촉하는 방법, 공작망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방법, 카메라나 녹음기 등 채증 장비를 사용하는 요령 같은 것을 실습했다. 교수님들은 진지하게 가르치기를 원했지만, 피교육생들은 그저 느슨하게 임했다.
나는 후반기에도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학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동기들과 어울려 놀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후반기 교육 중에 단체로 자동차 면허도 땄다. 당시에는 아직 자동차 운전이 일반화 되기 이전이라 입사한 친구 중에 면허증 소지자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면허학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후 단체로 면허시험을 쳤다.
나는 하도 농땡이를 쳐서 혹시 필기시험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요행히 가까스로 붙었다. 면허증을 딴 후 18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10년 된 대우 로얄살롱 중고차를 샀다. 구닥다리 똥차였지만 꽤 큰 차였다. 크기로만 보면, “국장급 차”라며 친구들이 놀렸다. 이 차는 내가 분당으로 이사한 후에 분당-내곡간 고속도로에서 술 먹고 한밤중에 성능을 마음껏 시험해 본 적도 있었다. 철 없던 시절이었다.
후반기에는 산업시찰이나 판문점과 땅굴 견학 등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자주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 그 해에 대전에서 과학엑스포가 열렸기 때문에 그 곳에서 며칠간 숙박하면서 엑스포를 관람하기도 했다. 당시엔 정규과정 학생들이 지방에 내려가면, 지부 요원들이 아주 융숭하게 신경을 써 주는 게 관행이었다.
전국 각지를 다녀보니 각 지방마다 음식문화가 많이 달랐다. 전주에서 먹었던 비빔밥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빔밥 자체도 맛있었고, 무엇보다 밥상 위의 그 푸짐함이 인상 깊었다. 광양제철소를 들르는 길에 남원에서도 그럴듯한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산에 들렀을 때는 그 지방 특산의 최고급 해물탕을 먹었는데, 맛이 영 별로였다. 경상도 음식은 그저 맵고 짜기만 했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었지만, 경상도 음식이 그렇게 형편 없는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우리들은 정식으로 부적부 번호가 새겨진 신분증을 지급 받았다. 부적부 번호란 국정원 직원 개개인의 고유번호다. 나는 27444란 부적부 번호를 부여 받았다. 번호가 1번부터 시작했는지 10001번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던 나보다 앞서 국정원을 거쳐 간 선배들이 적어도 만 명 이상은 된다는 의미였다.
신분증에는 상반신 사진이 부착되어 있고 각자의 고유의 전자칩이 내장되어 있다. 국정원 직원의 신분증은 단순히 직원의 신분을 표시하는 데 거치는 게 아니라, 전자 출입증 구실을 한다. 청사를 출입할 때 신분증이 열쇠 구실을 한다. 청사 내에서는 직원들의 동선이 완벽하게 모니터 된다는 뜻이다. 누가 지각을 했는지, 누가 야근을 했는지 자동으로 입력이 된다.
따라서, 외부인이 신분증을 입수하게 되면 무단으로 국정원 청사에 접근할 수 있다. 외부인이 신분증을 도용하여 직원을 사칭하는 범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런 이유로 신분증 분실은 주요 처벌대상이다. 국정원 직원의 징계는 거의 8-9할이 신분증 분실로 인한 것이다. 최하 부서장 경고감이다. 경고라도 받으면, 제 때 진급하는 데 상당한 애로가 생긴다.
그렇게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의 신분증 관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아주 철저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신분증을 아예 와이셔츠의 호주머니 속에 핀으로 고정시켜 다닌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을 가장 쉽게 감별하는 방법은, 와이셔츠의 윗주머니를 보면 된다. 주머니 속에 딱딱한 신분증을 숨기고 있으면, 국정원 직원이 틀림이 없다.
이렇게 중요한 신분증이다 보니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위, “신분증을 까는” 일을 극도로 창피하게 여긴다. 그래서, 평소 신분증을 “까지”않고 상황을 수습하는 능력(?)을 길러 두여야 한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옛날 거리에 차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신호 위반에 걸리더라도, “야 비켜! 바빠!” 정도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이야 사정이 많이 변했다. 시절이 변해 이제는 거리의 의경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 됐다. 괜히 부딪혔다간 창피만 당하기 십상이다.
옛날에는, “포(包)가 포(包)를 잡아먹는 법이 어디 있는감?”정도로 얘기하면 피차간 적당히 요해가 되었던 모양이지만, 요즘은 “같은 정부미 먹는 사람끼리…”라고 구차하게 동질감을 호소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야! 지금 미감(미행감시) 중이야!”라고 업무내용을 고백(?)하고서야 겨우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애마 로얄 살롱을 몰고 시내를 운전하다가 까칠한 의경에게 걸린 적이 있다. 부득이 신분증을 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젊은 의경은 나의 신분증을 이리 저리 한참이나 살펴보고 난 후, “신호를 더 잘 지켜야 하실 분이…”라며 뼈(?) 있는 창피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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