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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양심증언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

기자회견에 즈음하여

 

 

안녕하십니까? 김기삼입니다.

 

저는 오늘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을 설명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지난 김대중 정권 5년간 국가 통치권자에 의한 반역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적을 이롭게 하고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눈이 어두워 우리의 조국에 반역행위를 했다고 믿습니다.  (아래에서는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김대중 씨는 노벨상 수상을 공작하기 위해 햇볕정책이라는 기만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김대중 씨는 노벨위원회가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와 인권만으로는 부족하고,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breakthrough)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씨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에게 비밀리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저는 2003. 1. 발표한 글에서 남북이 정상회담 대가로15억 달러에 합의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민족에 대한 배신이고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김대중 씨를 악마적인 사기꾼이라고 판단합니다.


저는 김대중 씨의 노벨상 수상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판하고 싶진 않습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중에 누구라도 노벨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햇볕정책이 정책 자체로서 큰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정책이란 것은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취사선택의 문제입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햇볕 저편에 감추어진 김대중 씨의 노욕입니다.


김대중 씨는 자신이 5천년 민족사의 최고의 민족 지도자로 추앙 받으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2건국위원회라는 기구가 김대중 씨를 우상화하기 위해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받기만 하면 국민들이 자신을 떠받들어 줄 것이라고 환상에 빠졌습니다.


햇볕정책은 처음부터 김정일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햇볕정책은 대한민국 국민을 속여 김정일에게 무한정 퍼주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만 술책이었습니다. 햇볕정책은 국제사회와 노벨위원회를 속여 한반도에 평화가 조성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한 속임수였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김대중 씨는 정권 차원에서 로비와 공작을 벌였습니다. 국가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노벨상 수상에 초점을 맞추고 동원되었습니다. 청와대가 주도하고 국정원이 동원되었습니다. 국정원은 반역의 종범노릇을 했습니다. 간첩 잡는 일은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됐습니다. 대북 공작은 쓸 데 없는 짓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국정원은 김정일에게 몰래 퍼주는 데 적극 나서다, 급기야는 적에게 군자금을 대주는 데까지 관여하게 됐습니다.


 김정일은 우리가 제공한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우리는 김정일의 상시적인 핵 공갈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국정원이 안보를 지키는 데는 소홀히 하고, 안보를 허무는 데는 열심히 나섰던 결과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외교와 국방도 망가졌습니다. 김대중 씨는 김정일과 야합하면서 시종일관 동맹국인 미국을 속이려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안보의 근간이라 말할 수 있는 한미동맹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동맹국의 군사적인 협조 요청은 외면하면서도 우리의 국익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동티모르에는 군대를 파견하고 전폭적인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호르타 외무장관으로부터 노벨상 추천장을 받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 군은 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적이 먼저 쏘기를 기다려야 하는 한심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재래식 무기에서의 우리의 군사적인 우위는,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굴욕을 강요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에게 돈을 대기 위해 특정 기업에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공적 자금을 편법 지원해주고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김대중 정권 시절 현대그룹에 지원한 공적 자금이 34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출금 중 일부는 이미 상환불능으로 처리되었다고도 합니다.


햇볕정책에 비협조적이었던 모 기업은 시범 케이스로 공중 분해 시켜버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대가 특혜 대출 받은 자금 중의 일부는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는 데 쓰였습니다. 또 다른 일부는 김대중 자신이 착복하여 스위스, 홍콩, 미국 등지에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정권은 지난 89년부터 10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세계 청년축제 같은 정치적인 행사에 국력을 지나치게 낭비한 나머지 경제가 소생불능 상태로 빠졌습니다. 지난 90년대 중반, 북한 내에서는 약 300만 명에 달하는 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 지난 98년 즈음, 김정일 정권은 붕괴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인해 고립무원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씨가 죽어 가던 김정일을 살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그만큼 연장되었습니다.  


김대중 씨는 자신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치적을 과장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물론, 노벨상 수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행동하는 양심이나  아시아의 만델라등의 갖가지 신화가 조작됐습니다. 국가의 모든 홍보기관이 김대중 씨의 개인 선전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국제 사회에서는  홍보공화국이라고 비아냥과 조롱이 뒤따랐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인권 수호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외국에 입양된 장애아를 초청하여 한바탕 쇼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쪽의 우리 동포들의 참혹한 인권 실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렵게 탈북한 동포들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비정한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노벨상 위원회가 관심을 표명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 없이 대거 북송 했습니다. 겉으로는 인도주의라는 포장지로 감쌌습니다. 정작 우리의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명예를 건지기 위해 우리 나라의 명예는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민주화 투사임을 자처하던 김대중 씨가 국정원을 동원하여 불법 도청을 확대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자신의 정적을 감시하기 위해 그 어느 정권보다 정보기관을 남용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서 언론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세무조사를 통해 보복했습니다. 유력 언론사 대표들이 투옥되고 언론 사주 부인이 투신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모든 일들이 한낱 메달에 눈이 먼 한 개인이 국가최고통치권자의 직위를 악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비극의 가장 밑바탕에  저주받을 노벨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대해 국민 여러분들께서 조금이라도 아셔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서라도 김대중 씨의 반역행위를 국민 여러분들께 고발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이러한 일들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고, 합당한 사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나서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권이 나서지 않더라도 국민 여러분들이 관심을 기울이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지난 8년간 정치인과 언론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도 선뜻 나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무임승차자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내가 왜 이처럼 이역 하늘 아래에서 숨어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수 없이 자문해 보았습니다. 저는 옛날 중국 초나라 굴원이 죽기 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취해 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다 이렇게 내몰리게 되었다고 자조하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권세에 의아하여 만고에 처량해지기보다는 양심을 지키다 일시적으로 외로워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진실과 양심에 비춰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 5, 김기삼 드림.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공작 개요

 

 

03/03/98    이종찬 국정원장, 스웨덴 미카엘 슐만 노벨재단 이사장과 만찬

 - 슐만 이사장은 외무부 주최 아셈회의에 스웨덴 대표로 방한.

 

05/18/98    이종찬 원장, 스웨덴 한영우 박사와 면담.

 - 한영우 박사는 오랫동안 스웨덴 정부의 공의(주치의)로 근무,

 - 스웨덴 정부 고위 인사와 친밀 교분. 

 

05/xx/98    이종찬 원장, 김한정 특채, 노벨상 공작 담당관으로 임명.

 

 - 김한정은 1988-92년간 김대중의 공보비서로 근무.

 - 김한정은 미 뉴저지주 럿거스 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 김한정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재학 중 운동권으로 활동.

 - 김한정은 지난 92년 간첩 이근희를 이상수 의원에게 소개.

 

 - 이종찬 원장, 조준오 특채, 노벨상 공작 담당원으로 임명.

 - 조준오는 김대중의 측근인 전 대법관 조승형의 조카.

 - 조준오는 98-2000년간 김한정의 비서(조수) 역할.

 

 - 김한정은 2000년 중반 조준오 후임으로 김형민을 발탁.

 - 김형민은 현 외환은행 부행장.

   (이른바 론스타의 “검은 머리 대주주"가 김대중일 가능성을 시사함.) 

 

06/10/98    양세훈 노르웨이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만찬.

 - 양 대사는 룬데스타드에게 김대중의 대내외 업적을 설명.

 

06/11/98    양세훈 대사, 프란시스 세제르스테드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오찬.

 - 양 대사는 세제르스테드 위원장을 방한 초청.

 

07/06/98    양세훈 대사, 헬게 파로 노벨위원회 고문과 만찬 회동..

 - 양 대사는 파로 고문에게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설명.

 

08/xx/98    이종찬 원장, 대외협력보좌관 신설하고, 이종훈 이사관을 임명.

 - 이 보좌관은 전주고, 육사 출신(24)으로 노르웨이 연수파견, 동구과 장, 구주단장 등을 역임한 노벨상 업무 전문가.

 

09/29/98    이종찬 원장, 서울에서 한영우 박사와 면담.

 

01/04/99    김한정, 한영우 박사 방한 초청.

 - 김한정은 한영우의 서울 체류 시 모든 비용과 편의 제공.

           

02/10/99    김한정, LA 교포 치과의사 강대인과 이희호 저내일을 위한 기도출판 논의.

  

02/25/99    김한정, 건너 스톨셋 노벨위원회 부위원장 방한 초청.

 - 스톨셋 주교는 노르웨이의 김수한 추기경에 비견되는 인물.

 - 김한정은 스톨셋 부위원장의 김대중 예방을 배설.

 

03/12/99    스톨셋 주교, 김한정에게 초청과 환대에 대한 감사 편지.

 - 스톨셋은 2000 6, 김대중에게도 감사 편지 발송.

 

05/22/99    김대중, 이종찬 국정원장 경질하고 천용택 임명.

 - 이 원장은 익일 국정원 고위 간부 인사안을 결재할 예정이었는데, 동교동에서는 이 원장이 차기를 노린다고 판단하고 전격 경질.

 

05/31/99    천용택 원장, 김한정을 국정원에서 해임.

 - 김한정이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AP) 사무부총장으로 복귀한 후 노벨상 공작은 FDLAP 명의로 진행. (FDLAP 의장은 99. 3. 김상우 전 의원에서 한승주 전 장관으로 변경)

 

06/22/99    김한정, FDLAP 주최 버마 민주화 전략을 위한 국제 비민간기구 포럼 개최.

 - 김한정은 동 행사에 얀 람스타드 라프토 재단 부위원장 방한 초청하고, 김대중 예방을 배설.

 - 국정원은 람스타드 부위원장의 황장엽 면담을 주선하고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자료 등을 제공.

 

 - 김한정, 동 행사에 노르웨이 단체 월드뷰라이츠 루네 허쉬빅 사무총장, 에릭 숄하임 의장 방한 초청. (월드뷰라이츠는 노벨상 수상식 후 축하 콘서트를 담당하는 기구)

 - 허쉬빅과 숄하임은 포럼에 참석한 후 마이클 잭슨 공연 관람. 

(당초 동 마이클 잭슨 서울 공연은 김한정이 노벨상 공작의 일환으로 기획 했던 행사.)

 

07/04/99    김대중,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 수상.

 - 김한정은 토마스 포글리에타의 지원을 받아 동 메달 수상에 성공.

 - 포글리에타는 필라델피아 민주당 다선 의원 출신으로 클린턴 정부의 주 이탈리아 대사로 재임.

 - 그는 오랫동안 김대중 추종자로 활동한 공로로 김대중 노벨상 수상 행사장에 참석한 2명의 외국인 중 한 명임. (당시까지 동 자유의 메달 수상자 중 약 과반수가 노벨상도 수상. 이 상을 수여한 후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공작은 본 궤도에 진입. 이후 김대중은 김한정에게 노벨상 수상 공작에 대한 전권을 부여)   

 

08/28/99    김한정, 스웨덴어 판감옥에서 대통령까지출간.

 - 동 서적은 김대중의 옥중수기를 스웨덴으로 번역한 것임.

 

 - 이병춘 스웨덴 파견관(참사)이 동 책자발간 특명사업을 총괄.

 - 이 원장이 이 참사에게 특명사업을 지시하고 연장 근무를 명령.

 

 - 한영우 박사가 동 출판 공작에 핵심 중계인 역할을 담당.

 - 스웨덴 교포 최병은 (김대중 추종자) 가족이 번역 담당.

 - 팔메 여사가 서문을 쓰는 등 스웨덴 유력인사 참여.

 - 출판 소요 경비는 김한정이 국정원 자금으로 지급. 

 

08/31/99    김한정, 이종찬 전 원장 대동, 스웨덴노르웨이 출장.

 - 자서전 출판 후 현지 분위기를 탐문하기 위한 목적.

 - 김한정과 이종찬은 스톨셋 주교 및 기타 유력 인사들과 면담.

 

09/29/99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 박 대사는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누가 될 것인지 문의.

 

12/03/99    국정원,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2002년 예정)”에 정부 차원의 경비지원에 반대

 - 국정원은 예산지원이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으로 판단. (사업 소요 경비는 약 20 (200만불) 정도로 예상)

 

12/14/99    김대중, 김한정을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임명.

 - 당시 김한정은 36세로, 전례 없는 발탁 인사였음.

 - 김한정의 부속실장 취임 후 노벨상 공작은 청와대 주도로 진행.

 - 김한정은 한영우 박사,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문정인 연세대 교수, 박노용 국정원 북구팀장 등에게 직접 지시.

 

 - 김한정은 99 6 – 99 12월간 수 차례 동티모르 방문하여 동티모르 상록수 부대 파견과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 문제 협의.


 - 김한정은 99 12월 김정일 장남 김정남과 남북정상회담을 뒷거래한 것으로 추정. (회담 대가로15억 달러 제공 합의설)

 

01/01/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북 관련 협의.

 

 - 허쉬빅은 북측 윤이상 앙상블의 방놀 공연과 남북한 판문점 평화 콘서트 공연을 협의하기 위해 윤이상의 장녀 윤정(미국 거주)을 대동하고 방북, 윤이상의 처 이수자 (평양거주)를 방문.

 

01/15/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북 결과 디브리핑.

 - 허쉬빅은이수자가 윤이상 앙상블 공연과 관련 김용순과 협의했다고 언급.

 

01/20/00    김대중,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 재정지원 지시.

 - 김한정은 한영우에게 김대중의 지시를 직접 전달.   

 - 국정원은 스웨덴 파견관의 보고에 극도로 당황한 모습.

             - 외무부도 몹시 곤혹스러워 함.   

 

01/22/00    김한정 등, 대외언론홍보 관련 핵심 인사 비밀 회동.

 - 청와대가 모든 홍보활동을 총괄 (컨트롤 타워)하기로 결정.

 - 주 1회 홍보조정회의를 개최키로 결정.

 

01/xx/00    잰 엘리아손 스웨덴 외교차관, 방북 관련 한영우 박사와 협의.

 - 엘리아손은 2000. 3월 방북할 예정으로, 김대중의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한국정부의 비밀 대표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

 

             - 한영우, 엘리아손 방북 관련 김한정, 박지원의 입장 관련 제보.

 - 한영우는김한정과 박지원은 국정원이 동 외교차관의 비밀 방북 문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매우 안좋게 생각한다.”고 언급.

 

             - 한영우, 손명현 스웨덴 대사의 김대중 언급 관련 제보.

             - 손 대사는공관장 회의차 방한 시, 김대중이 엘리아손의 방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김대중이엘리아손이 놀랄만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음을 전언.

 

01/27/00    김한정, 구스마오 대통령, 라모스 호르타 장관 방한 초청.

             - 김한정은 이들에게 국회의사당 건립 등 지원을 약속.

 - 호르타의 노벨상 추천 대가로 거액 전달.(삼성이 스폰서 역할)

 

02/01/00    2000년 노벨평화상 추천 마감.

 

02/03/00    박경태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 박 대사는 (CIA 관점에서) 북한 정세를 설명하고, 한국의 경제위기(IMF 사태) 조기 극복이 김대중의 리더쉽 덕분이라고 자랑.

 

02/15/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

 - 허쉬빅의 2차 방북 관련 논의.

 

02/29/00    김한정, 한영우 박사와 마이클 슐만 노벨박물관장 방한 초청.

 - 김한정은 한영우와 엘리아손의 3월 방북시 김정일에게 전할 대북 메세지 전달 문제를 협의.

 - 김한정은 마이클 슐만 노벨 박물관장과 노벨상100주년 기념 전시회 경비지원 문제를 마무리.

 - 김한정은 슐만의 김대중 대통령, 이종찬 전 원장, 박지원 문화부 장관, 유종근 전북지사 등과의 면담을 배설. (유종근 지사가 방북 메시지 전달자로 지목된 것으로 추정)

 - 슐만의 방한 초청 경비( 2만 불), 한영우에게 지급한 사례금 (2 만 불)은 국정원 예산에서 집행.

 - 노벨 박물관과 호암재단은 의향서(the Letter of Intent)를 교환하고, 호암재단이 동 기념 전시회 경비 전액을 부담키로 합의.

 

02/31/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만찬 회동.

 - 허쉬빅의 2차 방북과 윤이상 앙상블 방놀 초청 공연 등 협의.

 

03/10/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오찬 회동.

 - 허쉬빅은북한이 윤이상 앙상블의 핵심 연주자의 부상을 핑계로 방놀 콘스트를 취소했다고 전언.

 

03/17/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오찬 회동.

 - 허쉬빅의 2차 방북과 남북한 판문점 평화 콘서트 등 논의.

 

03/18/00    잰 엘리아손 스웨덴 외교 차관, 방북.

 - 엘리아손은 김영남의장, 백남순 외상 등과 면담.

 

03/31/00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 부부 초청 만찬 회동.

 - 박 대사 스톨셋에게 베를린 선언과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해 설명.

 - 스톨셋은 박 대사에게 베를린 선언 관련 자료 제공을 요청.

 

04/07/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파견관은 허쉬빅에게 북쪽과 직접 연결선을 구축하도록 조언.

 

04/10/00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

 

04/10/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면담.

 - 허쉬빅의 김용순과의 직접 채널 구축 등에 관해 협의.

 

04/11/00    한영우 박사, 스웨덴 엘리아손 외교 차관의 방북 결과 청취.

 - 엘리아손 차관은 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놀랐다.”고 언급.

 - 엘리아손은 자신의 방북 시 북측에 정상회담 개최를 권고했는데, 북측 인사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언급.

 

04/14/00    박광태 대사, 룬드 전 주한대사 만찬 참여, 스톨셋 주교와 면담.

 - 박 대사는 남한의 인권상황과 국가보안법 관련 논란에 대해 설명.

 - 스톨셋은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관심 표명.

 

04/21/00    국정원, 김대중에게 올해의 노벨상 수상 전망 보고.

 - 동 보고서는 이제까지의 활동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접근 방향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극도로 보안에 유의할 것을 강조.

 - 특히, “노벨위원회 측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있어야 김대중의 수상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

 

04/26/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허쉬빅은 이수자와 계속 협의 중이라면서, 윤이상 앙상블 공연과 판문점 평화 콘서트 공연 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보고.

 

05/04/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오찬 회동.

 - 허쉬빅의 2차 방북과 윤이상 앙상블과 남북한 판문점 평화 콘서트 공연 등에 대해 계속 논의. 

 

05/24/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허쉬빅은 자신의 방한 관련 일정 변경을 통보.

 - 허쉬빅은 박지원 장관, 박상권 KBS 사장, 김상우 아태지도자회의 의장 등과 면담 예정이라고 언급.

 

05/25/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한 관련 논의.     

 - 박종O 파견관은 허쉬빅에게 조수미를 만나보라.”고 조언.

 

06/05/00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와 오찬 회동.

 - 박 대사는 스톨셋에게 남북정상회담 준비 상황과 김정일의 최근 방중 동향에 대해 설명.

 

06/15/00    남북정상회담 개최.

 

06/19/00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면담.

 - 박 대사는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의미에 대해 설명.

 

06/21/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남북한 판문점 평화 콘서트 공연 개최 등에 대해 협의.

 

06/22/00    노르웨이 파견관, 오메가 TV의 프랑크 잔센 사장과 오찬 회동.

 - 잔센은한반도에 화해를 가져 온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

 

06/24/00    김한정, 노르웨이스웨덴 방문. (김한정의 7번째 북구 방문)

             - 김한정은 노벨상 수상 마스트 플랜을 구상.

 

07/06/00    박경태 대사,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회동.

 - 박 대사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정상회담 후속 조치에 대해 설명.

 

07/14/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허쉬빅은 남북한 평화 콘서트 장소가 판문점에서 서울로 변경되어 8.15개최될 예정이라고 전언.

 

08/01/00    스웨덴 파견관, 분데빅 전 수상과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한 논의.

 - 허쉬빅은 아태지도자회의 측과 자신들의 서울 체류 일정을 협의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 부탁할 일은 없다.”고 언급.

 

08/15/00    1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 개최.

 - 김한정은 분데빅 총리 일행의 김대중 대통령 면담을 배설하고, 국정원 박노용 북구팀장에게 분데빅 일행을 비밀리에 이산가족 상봉장으로 안내하도록 지시.

 - 김한정은 이들과 임동원 원장, 박지원 장관 등과의 면담도 주선.

   (분데빅 총리의 상봉장 관람이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작용)

           

08/20/00    박경태 대사, 스톨셋 주교룬데스타드 소장과 만찬 회동.

 - 박 대사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동향에 대해 설명.

 

08/22/00    노르웨이 파견관, 잔 람스타드 라프토 재단 부이사장과 면담.

 - 라프토 재단 주최 “2000년 한반도 인권행사 관련 논의.

 - 동 행사는 오슬로에서 11월 개최예정으로 국제 세미나와 회의, 라프토상 수상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계획.

 - 람스타드는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수상 후보임을 시사. 

 

08/23/00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 허쉬빅은 파견관에게 분데빅의 방북 의사를 통보하면서, 북측의 방북 초청장을 보내주겠다고 약속.

 

08/25/00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잔 람스타드 부위원장과 통화.

 - 람스타드는 김대중에게 라프토 상을 수여키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면서 10 4일 공식 발표시까지 보안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

 

09/05/00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와 만찬 회동.

 - 스톨셋은 정상회담 후 김정일의 변화 동향에 관심 표시.

 - 스톨셋은 비전향 장기수의 대북 송환에 대해 문의. 

 

09/07/00    박경태 대사파견관, 잔 람스타드 부위원장과 만찬 회동.

 - 박 대사와 김남용 파견관은 라프토 상 수여에 감사 표시.

 - 람스타드는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당초10 4일 발표할 계획을 변경, 9 28일 수상을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

 

09/08/00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프랑크 잔센 사장과 오찬 회동.

 - 잔센 사장은 한국의 인권상황 신장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모 위원회가 자신에게 그 문제에 대해 조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언급하고, 그 위원회가 노벨위원회임을 암시. 

 

10/13/00    노벨위원회, 김대중 대통령에 노벨평화상 수상 결정.

 

11/05/00    김대중, 라프토 인권상 수상.

 

12/10/00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