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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3. 병아리 기관원 시절

14. 국정원을 지망하려는 후배들에게 이상으로 정규과정 1년간의 교육에 대해 주마간산 식으로 회상해 보았다. 나의 경험이 국정원에 입사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국정원 정규과정 교육 경험을 마무리 하면서, 이 기회를 빌어 국정원을 지망하려는 젊은 후배들에게 내가 평소에 개인적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말을 몇 마디 전하고자 한다. 요즘은 국정원이 꽤 인기 있는 직장이라고 한다. 입사 경쟁도 아주 치열하다고 한다. 도청문제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으로서의 국정원의 인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내 개인적인 짐작으로는, 국정원의 근무여건이나 급여수준 등이 어느 정도 공개되어 더욱 그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국정원의 봉급은, 다른 모든 사항들과 마찬가.. 더보기
13. 부적부번호 27444 후반기 교육은 출퇴근 교육이었다. 전반기에 비해 훨씬 여유가 있었다. 반도 재조정되었다. 각자 보직하게 될 업무 위주로 소규모 반으로 재편성 되었다. 우리들은 국내정보반, 해외정보반, 북한정보반, 공작반, 수사반, 심리전반, 통신반 등 각각 세부 전문 직렬 별로 나누어졌다. 나는 국내정보반에 배속되었다. 전반기 교육을 마칠 즈음에 훈육관과 진로 상담이 있었는데, 나는 “국내정보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우리 반은 남녀 합해 모두 15명이었다. 후반기 교육은 주로 현장실습 위주의 교육이었다. 예를 들면, 면담유출 기법을 실습하기 위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인사를 접촉하여 특정한 정보를 알아내 오는 과제가 부여되기도 했다. 그 밖에 미행 감시하는 요령이라든가, 공작원을 접촉하는 방법, 공작망을.. 더보기
12. 공수와 해양 훈련 전반기 교육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를 즈음에 산악훈련을 갔다. 나는 동기들이 먹을 쌀자루를 지고 북한산에 오르느라 땀깨나 흘렸다. 북한산과 도봉산 일원에서 야영하며 며칠을 지냈다.[1] 우리들은 산 속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낮에는 체력 단련을 하고, 야간에는 담력 훈련을 하기도 했다. 몸은 고되기는 했으나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이었다. 비좁은 텐트 속에서 야영하다 보니 동기들끼리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끔 훈련 후에는 소주 한 잔으로 회포를 풀 때도 있었다. 북한산 위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며 마시는 소주는 특별한 정취가 있었다. 밤이면 텐트 속에서 꾼들끼리 몰래 어울려 세븐오디 포커를 치기도 했다. 세븐오디가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포츠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훈육관은 이런 종.. 더보기
11. 정보학교의 생활 정규과정 교육은 그리 만만한 교육이 아니었다. 피교육생 신분이란 게 다 그렇지만, 머리가 굳어진 후 통제된 생활을 강요 당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간이나 하다 보면 지치고 진이 빠진다. 처음 몇 달간은 한겨울의 훈련이라 더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었지만, 그렇다고 지옥훈련 같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몇 주가 지나자 “퇴사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생겼다. 제임스 본드를 꿈꾸고 들어왔는데, 막상 겪어 보니 논산훈련소에 재입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퇴사하는 요원이 생겨 결원이 되면 금방 차순위 입소자가 그 자리를 메웠다. 나도 처음 세 달은 무척 견디기가 힘들었다. 전혀 새로운 세계에 내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보기
10. 03 정부의 정규 30기 1993년 1월 10일, 나는 안기부 정보학교에 입소했다.[1] 한 겨울이었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고, 정식으로 정보기관원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입사하기 전에도 인성검사다 뭐다 하며 몇 차례 드나 들긴 했지만, 막상 정식 요원이 되어 들어가니 기분이 달랐다. 청사 내에 줄지어 서 있던, 곧게 뻗은 소나무가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보였다. 텅 빈 운동장에 누렇게 변색된 잔디가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했다.당시엔 안기부 청사가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다. 해외와 대북 정보를 담당하던 부서들은 이문동 청사 내에 있었다. 물론, 우리가 입소한 정보학교도 이문동에 있었다.[2] 이에 비해 국내 정보 부서와 대공수사, 외사보안 부서들은 남산 청사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이문동, 남산이라고 불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