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9. 안에서 본 국민의 정부 II

42. ‘악마적인’ 사기꾼

       김대중 정권 시절에 국정원 내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히 기록해 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이 시절 국정원 내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여러 일들을 되돌아보면, 그들이 말한 국정원 개혁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황된 구호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김대중 정권은 국가정보원이라는 공적 기관을 완전히 사설 흥신소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권력을 잡은 전라도 출신들은 국정원이라는 조직을 철저히 사유화했다. 김대중 자신은 국정원을 반역의 도구로 이용했고, 그의 가족들은 범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김대중 정권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사기와 협잡으로 일관했다. 대북송금, 불법도청, 그리고 각종 게이트는 이러한 범죄행위 가운데 일부 마각이 드러난 사건들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라는 공조직은 찢기고 갈려 처참하게 골병이 들었다. 

김대중 정권이 국정원을 어떻게 악용했는지 설명하기 전에, 김대중 씨의 개인적 성향부터 좀 짚고 넘어가는 게 나을 성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 내에서, “김대중 이라는 사람에 대해 왜 이다지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지?”에 대해 나름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대중이란 사람을 기본적으로, “악마적인 사기꾼으로 판단한다. 남을 속이는 데는 과히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이고, 정권의 명칭도 국민의 정부라고 이름 지었지만, 그가 말하는 국민은 언제나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특정지역 국민만을 의미했다.

생전에 김대중 씨는 정치인의 자질을 언급할 때, 소위 『서생과 상인론』을 즐겨 거론하곤 했다. 그의 이 유명한 지론에 의하면,“정치인은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적인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보기에 따라선 절묘한 댓귀가 멋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이론을 김대중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의 정치적인 족적을 따라가 보면, 그는 언제나 이상주의자의 가면을 쓴 현실주의자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지독한 마키아벨리스트의 전형이었다.

그 자신의 서생적 문제의식이란 것도, 진지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것이 라기 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계산 위에서 비롯되었다. 감옥 속에서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주워 얻은 지식에 불과했다. 일부 국민을 선동하기 위한 속임수로 사용되었고, 짧은 가방끈을 커버하기 위한 술수로 이용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부류는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처럼, 감정적이고, 격정적이고, 직선적이고, 직접적이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부류이다.

이들은 대개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기분파들이다. 돈키호테 형이다.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아랫사람을 쓸 때도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정적에게 도끼를 들더라도 앞 이마를 정조준해서 깐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편의상 앞통수들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두 번째 부류는 노태우, 김대중 대통령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은유적이고, 간접적이고, 이해관계에 밝다. 이들은 대체로 현실파들이다. 햄릿형이다. 이리저리 재고 신중히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뒤로 호박씨 까는스타일이다. 아랫사람을 쓸 때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한다. 이들은 정적에게 도끼를 들이댈 때 느닷없이 등 뒤에서 뒤통수를 내려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편의상 뒤통수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엔, 지난 8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앞통수뒤통수가 번갈아 가며 집권해 왔다.[1] 나는, ‘노태우 씨와 김대중 씨 간에 소위 “20 + 알파라는 은밀한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두 사람이 공유한 뒤통수성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 두 사람은 공히, 퇴임 후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감추어 두고 있는 점도 똑 같은데,[2] 이 또한 그들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진다. 

현실주의자로서의 김대중 씨의 면모는 그의 인사(人事)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김대중은 집권하고 나서, “이른바 동교동 가신들에게는 국가 경영을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충성심은 조금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국사를 함께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예를 들어, 동교동의 행동대장 김옥두 의원 같은 사람은, 별명이 꼴통이었다. 다른 이들도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그저 시키는 대로 돌격하는 데만 익숙한 인간들이었다. 동교동의 맏형이라고 불리던 권노갑 씨도 야당 시절 가내 수공업 수준의 경영은 감당해 낼 수 있었겠지만, 국가를 경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자신들의 옛 가신들을 물리치고, 이미 이전 정권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이른바 신실세 트로이카라고 불렸던, 김중권 비서실장, 이종찬 국정원장, 김태정 검찰총장이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1999년 후반, 이른바 옷로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 실세로 활약했다.

김영삼 정권에서 비상계획위원장을 지낸 천용택 씨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이들뿐만 아니라, 임동원, 이기호, 신건 등 정권을 끝까지 지탱했던 핵심 인사들도 모두 이전 정권에서 이미 장, 차관직 등 고위직을 거친 인사들이었다. 김대중 씨는, “전라도 출신이 경상도 정권에서 그 만큼 인정받고 출세했으면 이미 능력은 검증된 게 아닌가?”라고 믿는 듯 했다.   

김대중 씨는 국가의 정보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도 현실주의자의 치밀한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초대 국정원장을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 국정원을 잘 아는 이종찬 씨에게 맡겼다. 국정원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데는 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1998년 초 정권 교체 후,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당신들 도움을 받아 정치할 생각이 없으니,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의 무수한 다른 말들처럼 순도 높은 거짓말이었다. 그 말은 국정원 직원들이 아니라, 신문 기자들이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실제로는, 그는 정권 초창기부터 국정원에다, “아침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국내 정보보고서의 분량을 더 늘려라고 채근하곤 했다.[3] 이종찬 국정원장은 아침잠 없는노인의 지칠 줄 모르는 정보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국내정보 부서의 분석관들을 닥달해야만 했다. 분석요원들 뿐만 아니라 수집요원들도 활동도 크게 늘어 났고, 특히 국내의 도,감청을 담당하는 과학보안국은 창설이래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다. 

국정원 내에서 정치인이나 요인들의 사생활이나 가십거리를 정리한 보고서를 조보(조보)라고 부른다. 보고서 이름에 왜 아침 조자가 붙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예전부터 아침에 보고한 보고서였던가 보다. 조보는 국가 지도자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정보들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이 조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4]

내가 대정실에 근무하던 시절만 해도, 조보는 보통 하루에 20 페이지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김대중 시절에는 조보의 분량이 이전보다 두 배 가량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이는 그가, “정치적으로 관음증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연히 통치권자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보고하는 주례보고의 분량도 대폭 늘어났다. 현안에 따라서는 보고서가 아니라 아예 책자 형태로 만들어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정원 안에서는 이를 대작(大作)이라고 이름이 좀 거시기 하지만- 불렀다. 이러한 일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김대중 시절에는 보고서의 내용이나 분량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형식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한동안,“() 대통령이 읽기 편하고, 보기 좋게 글자체도 키우라. 도표와 그래프도 최대한 많이 집어 넣어라라는 등 시시콜콜한 지시가 내려오곤 했다. 아마 국정원 역사상 이 시절만큼 국내 정보 분석관들이 보고서를 쓰느라 바빴던 때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pdf



나의 이론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뒤통수에 해당해야 하는데, 아직 그의 집권기간이기 때문에 뭐라고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한 사람은 멍청하게 국내에 숨겼다가 들통이 났고, 다른 한 사람은 현명하게 해외에 묻어두고 있기에 아직 들통이 나지 않은차이점이 있긴 하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안기부가 갖다 주는 보고서도 잘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점에서 양 김씨는 확연하게 대조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영삼 대통령은허리 아래 일에 관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점에서도 두 대통령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