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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증언/국정원의 도,감청 실상

국정원의 불법적인 도, 감청 실태

거짓의 희극, 도청의 진실

- 국정원의 불법적인 도청 및 감청 실태 -



1. 서언


국민 여러분께 또다시 드립니다. 


조국이 엄중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면서 무거운 심정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위선과 기만, 그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여러분께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송금, 그리고 임동원 씨의 간첩혐의를 밝힌 저의 글에 대해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간악한 무리들은 반성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저를 부도덕하고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들의 졸렬한 대응에 괘념치 않습니다만, 때가 되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저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믿습니다.


이제 우여곡절 끝에 특검제가 도입되어 진실 규명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고 있습니다. 특검제를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조국애가 발현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하신 판단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이 발견되는 그 순간까지 방심하지 말고 경계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편지에서, 전직 국정원 직원으로서“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 공개하고자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도청 문건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거짓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더 이상 자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거짓은 죄악입니다. 한 개인의 거짓도 용서될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국가가 조직적으로 거짓을 조장한다면 더욱 더 두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거짓말이 국가권력으로 옹호되고 권장되는 사회에서 교육부 장관을 열 번 바꾸고 교육개혁을 백 번 외쳐본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나라가 어찌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진정 후세대에게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정원의 도청 문건과 관련하여 신건 원장은 이제까지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국정원장으로서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의 거짓말은 이제 용인(容忍)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저는 그의 거짓말을 들을 때마다 국정원 직원의 업보(業報)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제는 민주당 대변인과 청와대 비서실장마저도 이 지긋지긋한 거짓말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무조건 우기면 된다’는 저들의 천박하고 저열한 발상에 치가 떨리도록 분노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거짓에 대해 단 한 번만이라도 엄정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문건은 국정원에서 작성한 자료가 맞습니다. 이 문건은 국정원 내에서‘메모 보고’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한때는‘물가정보’라고 불린 적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줄여서‘메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보고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지 여러분에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2002년 9월, 한나라당에서 도청 문건을 폭로한 후 신건 원장은 과학보안국을 해체하고 일부 인원과 기능을 수사국과 외사국으로 이관한 바 있습니다. 저는 과보국이 해체되기 전 상황을 중심으로, 현재 시점에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메모 보고서는 국정원 내에서 가장 민감한 보고서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국정원 내에서도 이 보고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90년대 중반,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부서인 대공정책실에서 부서장의 보좌원으로 재직하면서 이 보고서를 직접 담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메모 보고서의 생산과 유통


메모 보고서는 과학보안국(당시 8국)에서 생산합니다. 과학보안국은 국내 통화와 국제 통화를 도·감청하는 부서입니다. 업무의 성격상 국정원 내에서도 음지(陰地) 중의 음지 부서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조차 과학보안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국정원의 진정한 힘의 원천(源泉)은 바로 과보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과보국에 근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부서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이 부서는 3교대로 운영되었습니다(*그 후 4교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인은 못했습니다). 24시간 내내 대한민국의 모든 유무선 통신을 무차별 도·감청했습니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는 감청도 없지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불법으로 도청이 이루어졌습니다. 


도·감청의 분야에는 제한이 없었습니다. 주로 정치적인 내용이 많습니다만,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 걸쳐 도·감청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대공정책실에 근무하던 당시, 대구대학교의 학내 문제와 관련 재단측과 반 재단측이 오랫동안 분쟁하였습니다. 재단측의 모 인사가 외국에서 국내로 전화하는 내용이 오랫동안 이 보고서에 실렸습니다. 당시 반 재단측의 주요 인사가 이번에 교육부 장관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휴대전화도 도·감청이 가능합니다. 한국통신의 011- 전화는 오래 전부터 도청된다는 것은 국정원 내에서는 상식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정원 직원들은 011- 에 가입하기를 꺼려해 왔습니다. 저는 퇴사하기 전인 1999년도에 기조실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휴대전화의 도·감청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보고서의 형식은 지난 번 한나라당이 언론에 공개한 그대로입니다. 통화자들의 대화를 그대로 녹취한 것이 아니라, 통화 내용을 개조(改組) 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평가나 해석은 달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원 통화자의 발언 내용을 살립니다. 문체(文體)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세련되지 않은 문체일수록 외부에 유출되었을 때 국정원 문서가 아니라고 부인(否認)하기 쉽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과보국은 도청한 자료를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온라인으로 각 부서에 배포합니다. 이 보고서는 배포선(配布先)에 따라서 각 부서의 부서장실에 특정되어 있는 컴퓨터 단말기에 자동적으로 뜨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인쇄는 안 됩니다. 도청한 자료 중에서 극히 민감하고 중요한 것은 메모 형태로 작성하여 인편으로 차장실에 배포하기도 합니다. 이 메모는 B5보다 작은 조악한 용지에 거칠게 인쇄된 것입니다. 이 또한 유출에 대비한 것입니다. 


보고서의 분량이 많지 않는 해외부서의 경우 보좌원이 아침마다 중요한 내용을 추려 필사(筆寫)하여 부서장에게 보고합니다. 보고서의 분량이 많은 대공정책실의 경우, 이 보고서를 필사하는 직원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필사를 전담하는 이 직원을 흔히 메모 보좌관이라고 부릅니다. 


메모 보좌관은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대개 서기관(4급) 고참이 담당합니다. 제가 퇴사하기 전인 김대중 정권 초에는 정치과 출신 6급 직원이 한동안 이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메모 보좌관은 대개 아침, 오후, 퇴근 전 등 하루에 세 차례 정도 보고합니다. 한 번에 보고하는 분량은 10여 쪽에 달합니다.


메모 보좌관은 무척 피곤한 자리입니다. 아침 보고를 위해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골방에 혼자 않아 모니터만 쳐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베끼는 단순 작업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눈은 침침해지고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살이 박힙니다. 남의 말을 엿듣는 데 남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속된 말로‘할 짓’이 못 됩니다. 그래서 이 보직을 마치고 나면 대개 진급시켜 주는 것이 관행입니다.


메모 보좌관이 필사한 메모는 부서장이 먼저 읽고, 부서장이 다 읽고 나면 통상 부속실의 보좌원이 부서 내에 유통시킵니다. 보좌원은 먼저 부(副)부서장들에게 이 보고서를 일일이 전달하여 회람시킵니다. 부서장의 특별한 지시사항이 있을 경우, 관련 담당과장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담당과장이 직접 부속실에 와서 부서장의 지시사항을 확인하고, 메모를 다시 메모해 가야 합니다. 


메모 보고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복사하거나 찢어갈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아주 엄격하게 지켜집니다. 이 또한 외부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통을 마친 메모 보고서는 보좌원이 책임지고 파기합니다. 민감한 자료이기 때문에 따로 관리대장(管理臺帳)도 없습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폭로한 자료는 이렇게 파기되었어야 할 것이 파기되지 않고 바깥으로 나온 것을 다시 워드로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생산부서인 과보국에서 샌 것이 아니라 대공정책실에서 유출된 것인 듯합니다. 


이렇듯이 메모 보고서는 내용이나 형식뿐만 아니라 생산 목적이나 활용 방법 등에 있어서도 일반 정보보고서와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이는 대통령이나 원장 등 상부(上部)에 보고할 목적으로 작성되는 보고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원재료가 되는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메모 보고서의 내용을 분석하는 부서에서는 정보보고서의 생산에 참고하고, 수집 부서에서는 추가첩보 수집에 활용합니다. 


3. 맺음말


저는 국정원의 도·감청 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헌법과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불법이든 아니든 도·감청이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남파간첩과,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김정일의 똘마니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도·감청보다 더한 불법적인 방어활동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불법적인 도·감청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국민도 이해해 주실 줄 압니다. 그것이 국정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불법적인 도·감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간첩을 잡아야 하는 국정원이 간첩 잡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사찰이나 하고 있으니 당연히 욕을 먹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었으면 솔직하게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책임자들이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 이 처연한 코미디는 여기서 그쳐야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에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는 심 모 과장이라는 분은 이 보고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분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분은 대공정책실 학원과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능력 있고 민완한 정보관이었습니다.


지난 80년대에 학원 문제가 시끄러울 때 그분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여러 번 포상과 특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동기(정규 16기)에 비해 진급이 빨랐고, 선후배들 간에도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지역차별로 인해 오랫동안 부이사관으로 진급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 대북전략국(당시 5국)에 황장엽 선생 관리과가 신설되었을 때 대공정책실 경제과에서 옮겨와 겨우 과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이건모 전 감찰실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도청 문건과 관련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감찰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여러 가지 무리하게 일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강직한 분으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1999년 5월 말 천용택 원장이 부임했을 때, 출신 지역을 믿고 조직을 우습게 여기던 최 모 감사관(2급) 등 목포상고 출신들을 전격적으로 척결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 4월 초 신건 원장이 부임했을 때에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었던 정성O 전 경제수집 2과장의 비리조사 자료를 가지고 원장에게 독대(獨對) 보고했다가 광주지부장으로 좌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신건 원장은“모르는 일”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검찰의 조사는 분명히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입니다. 조사해야 할 국정원의 도청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도청 문제를 조사한 자체 감찰보고서의 유출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대로“이번에 검찰을 꽉 쥔”것이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국민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울러 이 일과 관련하여 한나라당에도 몇 마디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이 대선 직전 이 문건을 폭로하여 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큰 오판(誤判)입니다. 한나라당도 잘 알고 있다시피 국정원의 도·감청은 김대중 정권에서만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도 깨끗한 손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구태정치라는 역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재였습니다. 


선거가 불리하다고 해서 국익(國益)과 당리(黨利)도 구분하지 못한 것은 비난받아야 할 일입니다. 밝히려고 했다면 전모를 당당하게 다 밝히든가, 아니면 영원히 덮었어야 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선별하여 단계적으로 찔끔찔끔 흘리면서 선거에 전술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은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검찰에 당당히 나가 협조해야지, 지금처럼 여론이나 살피면서 미적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 기회에 신건 국정원장에게 몇 마디 권고드립니다. 이제까지 신건 원장은 자의든 타의든 국민을 상대로 무수한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이제 재임(在任) 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 동안의 거짓말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십시오. 그 길만이 국정원을 살리고 자신도 사는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힘없는 저를「국정원직원법」으로 고소하는 따위의 유치한 짓은 삼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국정원 직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저의 글로 인해 명예가 훼손될지도 모를 과학보안국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여러분은 욕을 먹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김정일의 마수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더 나은 환경에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머지않아 찾아올 것입니다. 이 모든 소동(騷動)은 국정원이 바로 서기 위해 치러야 하는 아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담담히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2003년 3월 24일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