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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터뷰/월간중앙 - 김대중 노벨상 공작자료 인터넷 올리겠다

인터뷰 - 월간중앙 (2012.2) : DJ 노벨상 공작 의혹 국정원 자료 인터넷에 올리겠다

[직격 인터뷰

DJ 노벨상 공작 의혹 국정원 자료 인터넷에 올리겠다

 

8년 만에 미국 법원에서 망명 허가받은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의 격정 토로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군 검찰 찾아와 대북송금 문제 등 의견 청취

 

메릴린치 투자 의혹은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 될 것

  

박성현 기자<psh@joongang.co.kr>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이 지난해 말 미국 법원으로부터 망명을 허가받은 사실이 얼마 전 알려졌다. 1970년대 각종 게이트와 권력암투의 여파로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미국에 망명한 이래 실로 수십 년 만에 생긴 일이다. 오랜 세월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진

망명이란 단어를 일깨운 그를 월간중앙이 직접 만났다.

  

가족들도 많이 지쳤다. 더 이상 이런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지 말라고 만류한다. 나처럼 가장의 의무를 게을리한 사람이 가정에서 잘리지 않은 건 기적과도 같다.

 

미국 법원으로부터 정치적 망명허가를 받은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는 홀가분해하면서도 허탈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3년 초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수상 로비를 비롯해 각종 대북 커넥션 의혹을 폭로한 뒤 그해 12월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8년 만인 지난해 말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이민법원은 그의 망명을 최종 허가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이후 노무현·이명박 정부와도 불화했다. 현재도 국정원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중지된 상태다. 또 미국 법원이 그가 북한 암살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할 정도로 북한정권과도 상극이다. 김씨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예민한 부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좌와 우, 남과 북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1993년 국정원에 입사해 대공정책실장 부속실,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 국제정책실, 대외협력보좌관실, 대북전략국 등에서 일했다. 2000년 퇴직한 그는 2003 1월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로비 및 15억 달러 대북송금 의혹 제기를 필두로 메가톤급 폭로를 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 대북 커넥션 의혹(2003 1 15),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도청 의혹(같은 해 3 24) 제기 등이다. 잇따른 폭로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2003 12월 망명 신청을 했고, 뒤로도 폭로를 계속했다. 2004년엔 5월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무기도입 비리 및 해외 자금은닉 의혹을, 2005년엔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을 가동했다고 밝혀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214일 밤 미국펜실베니아주에 사는 그와 인터넷 화상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미국 법원은 어떤 사유로 망명을 허가했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대응양상을 볼 때 내가 한국으로 돌려보내지면 체포되고, 통신 및 행동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또 대북 불법송금 의혹제기 등으로 북한에서도 나를 노릴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하다.

 

그동안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고충이 컸겠다.

 

다행스럽게 아이들이 다 잘 커줬다. 아버지가 변변치 않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어려서부터 한눈 안 팔고 공부도 열심히 해줬다. 온갖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해준 집사람에게도 감사한다.

 

인생 설계는 어떻게 하나?

 

어떻게 보면 12년을 허비했다. 자식 된 도리. 남편의 도리, 아비의 도리, 형제의 도리를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는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남은 인생을 이런 빚을 갚는 데 쓰겠다.

 

그는 미국에서 8년 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변리사와 같은 특허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망명 신청자로서 변변한 직장도, 수입도 얻지 못했다. 큰딸이 한국으로 치면 고3, 아들이 고1이 되도록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그는 자책했다. 부인이 실질적인 가사를 챙겼고, 한국의 친인척들에게서 도움을 받아 근근이 버텨왔다. 2년 전에는 선친의 임종도 못했을 정도다. 그는 국정원법 위반혐의를 받는 기소중지자다. 여권기한이 만료돼 갱신을 신청했지만 정부에 의해 두 번 거절당했다.

 

노벨상 공작에 관한 책 쓰고 있다

 

지난 8년간의 싸움도 일단락돼가는 기분이다. 향후 수순은?

 

내 인생이 이 일로 망가져버려 더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생계 문제도 있고 하니까 헤어나오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 내가 제기한 문제는 어떤 형식으로든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 텐가?

 

책을 구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공작을 정리해 보려 한다. 내가 폭로했던 사건 관련 자료는 적절한 시점에 인터넷상에 공개해 누구나 보도록 할 작정이다.

 

망명을 신청한 이후에도 폭로를 계속했는데, 신변의 위협은 없었나?

 

없었다. 나 자신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오히려 안전하다고 여겼다. 누군가 나를 해친다면 세상은 그가 누구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이후 한국 정부 쪽에서 대화나 접촉을 해온 일은 없는가?

 

2004년 군 검찰에서 젊은 장교가 나를 찾아왔다. 청와대 민정 쪽에서 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 장교가 민정수석에게 직보한다고 해서 그런 심증이 들었다. 나는 문재인 수석에게 편지를 보낸 기억도 있다. 그런데 그 후에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 등과 관련해) 김대중씨의 조사를 포기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제기한 대북송금 문제나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해 참여정부의 입장은 뭐였다고 보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수석 등은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해서 확실한 매듭을 짓자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지지기반이 그리 확고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와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정부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의지는 가졌으되 환부에 칼을 대지는 못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당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나?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하는 분들이 나를 찾길래 미국에서 만났다. 국정원과도 얘기를 좀 했다.

 

어떤 말을 나눴나?

 

대화 내용을 말하기는 좀 그렇다. 다만 나는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설명했고, 제기했던 문제가 대한민국의 핵심적 의혹이므로 이명박 정부에서 의지를 가지고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귀국해서는 함흥차사였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나 정권의 핵심부가 이 문제를 덮기로 한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이 정권 사람들도 올바른 집단은 아니라는 결론지었다. 힘은 있지만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언제쯤인가?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더 이상 내 문제를 다루지 않는 쪽으로 정리한 듯하다. 나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묻혀버린 것이다. 특히 2010 3월 내가 한국투자공사(KIC)의 메릴린치 투자 문제를 지적하는 편지를 KIC 사장에게 보낸 뒤로는 나를 대하는 정권의 분위기가 결정적으로 바뀐 듯하다. 그 후 이명박 정부는 나를 기피인물 내지는 위험인물로 보는 것 같다.

 

MB정부, 내 주변 사람들 압박

 

어디서 그런 낌새를 챘나?

 

2009년까지 나를 찾던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그 뒤로 연락을 끊었다. 또 2010년 봄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국정원 지인으로부터 네 편지 때문에 안에서 말들이 많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투자공사에 편지를 썼는데 국정원에서 왜 그러느냐고 반문했더니 편지를 가 쓰지 않았느냐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편지를 쓴 게 문제라는 뉘앙스였다. 그래서 정부가 내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편지 내용이 뭐였나?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3분의 2 이상의 투자손실을 봤다. 당시 미국에서는 메릴린치의 사기적 투자 유치 행태에 개인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메릴린치가 거액의 합의금을 무는 등 난리가 났다. 그런 소송이 한두 건이 아니었고 지금도 이어진다. 그래서 내가 한국투자공사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12억달러 이상을 손해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사법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의 입장이 뭐냐고 정중하게 물었다.

 

한국투자공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한국투자공사 (담당)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직원이 내 전화를 받고 아주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자신들은 미국의 50대에 속하는 대형 로펌에서 의견서를 다 받아봤다고 말했다. 자기네들도 뭔가 열심히 한다는 식이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만했나?

 

그렇지 않았다.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돌이켜보니 그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어처구니없었다. 나아가 이 문제가 이명박 정권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중에 한국 언론 보도를 보니 내 추측이 맞는 듯했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폭풍으로 몰아칠 걸로 본다.

 

메릴린치 투자 건이 왜 그렇게 치명적인가?

 

가령 자원외교 같은 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땅을 파보니 아니더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길이 많다. 하지만 메릴린치 건은 딱부러지는 사안으로 빼도 박도 못한다. 투자 과정이 석연찮고 불·탈법 의혹이 확연하다. 한 달 새 20억 달러 투자 건을 뚝딱 해치운 건 세계 어느 나라 투자관행에도 없다.

 

그게 기관이나 책임자의 문제라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겠나?

 

이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연루됐을 가능성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 문제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들었다. 나같이 정보계통에 경험을 쌓으면 이른바 이란 게 있다내가 2010년에 메릴린치 건으로 편지를 보냈으니 역린을 건드린 꼴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도 크게 실망한 듯하다. 역대 정권의 비리와 전횡 의혹을 그냥 덮어둔 데다 국정원이 주변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을 압박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 8월 책을 발간한 데 이어 그해 9월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로비의혹과 관련한 추가 자료를 공개했다. 그가 입수했다는 500쪽에 이르는 국정원 내부 자료의 일부를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달인 10월 자신과 관련한 대대적인 감찰조사가 국정원에서 이뤄졌고, 그와 가장 가까운 내부 지인이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자신과 e-메일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그 지인이 폭로에 도움을 줬나?

 

도움을 주었다기보다는 그분과 나는 형제같은 사이다. 내가 국정원 노벨상 공작팀에 들어갔을 때 그 분은 나의 팀장이기도 했다. 국정원은 나를 벌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니까 내가 가장 아파할 사람을 골라 대신 처벌했다.

 

얼마나 자주 연락했나?

 

2009년까지 연락했지만 그 뒤로는 자주 통화하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내 모든 메일이나 통신이 다 모니터링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거래하는 인상 주기 싫다

 

당신이 2010년 펴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에는 15억달러 대북송금설을 전해줬다는 미국교포 사업가 윤홍준씨 얘기가 나온다. 그는 북한 김정남과 가깝다고 쓰여있다. 또 윤씨의 주장을 토대로 김정남이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송금의 채널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의 김정남은 어떤 상태라고 판단되나?

 

윤홍준씨는 나와 한 얘기가 다른 데로 옮겨지는 걸 원치 않는다. 또 내가 뭘 알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김정남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본다. 사실 미국 등으로 도피해야 할 신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은 유일권력체제다. 그 체제에 장애가 되는 인물은 반드시 없애야 하는 구조이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당신이 제기한 각종 의혹이 규명될 것으로 보나?

 

책에다가 역대 대통령들을 나름대로 평가해 놓았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이래 원칙주의자와 변칙주의자가 번갈아 집권했다. 원칙주의자는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이고, 변칙주의자는 노태우, 김대중, 이명박이다. 순번으로 볼 때 이번에는 원칙주의자가 집권하지 않겠나? 다행히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모두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이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노벨상 로비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국정원 내부자료를 어떤 식으로 공개할 계획인가?

 

언젠가는 모두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PDF파일로 올려볼까도 생각했는데 아마도 한국의 국정원이 블로킹(접속차단)을 할 것 같다. 네이버나 국내 언론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도 블로킹당했다. 특정 언론사에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거래하는것 같은 인상을 주기 싫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방식을 택하겠다.

 

국정원이 접속을 임의로 차단할 수 있는가?

 

국정원의 역량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 얘기나 발언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을 극력 막으려 한다. 국정원에 재직하면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익히 봐서 안다.

 

국정원 입김이 미국에까지 미치진 않는다. 당장 미국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자료를 올리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국내에 전파되지 않겠나?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아무리 해봐야 국내에 전파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언론도 한심하다. 정작 중요한 자료를 줬는데도 쓰질 못했다. 2010 9월 내가 공개한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공작 의혹 관련 자료는 정말 민감한 자료였다. 분량도 20페이지나 된다. 어느 주요 언론도 제대로 반응을 안 했다.

 

자료의 신빙성이나 주장의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탓 아닐까?

 

꼭 검증이 안돼서 못 쓴다고는 할 수 없다. 국정원이 언론사에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국정원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국가 안보라는 본연의 임무에 상대적으로 더 충실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정원 출신인 당신의 눈에 비친 지금의 국정원은 어떤가?

 

잘못을 바로잡는데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정권과 권력을 지탱하는데 급급하다.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최인훈의 <광장>에서 한국전쟁 직후 남과 북 어디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제 3국으로 향한 주인공과 오버랩이 되는 듯하다.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조국인 대한민국이 내게 심히 부당한 대우를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한민국을 거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통일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