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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프로젝트(연재중)/2. 엇갈리는 반응

2. 엇갈리는 반응들

수상 발표가 있은 다음날 아침, 청와대에서는 작지만 뜻깊은 행사가 거행되었다. 다음은 월간중앙이 보도한 내용.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발표된 뒤 정확히 13시간이 지난 1014일 오전 9. 청와대 녹지원에서 집무실로 향하는 도로 양켠에는 청와대 비서실, 경호실 직원 300여명이 도열해 있었다. 이날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대통령님을 축하해 드리는 자리에 전 직원은 참가하라”는 구내방송을 듣고서였다.

아침 920분경, 출근하는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1호차가 관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직원들의 도열 행렬이 시작되는 녹지원 가까이에서 이내 멈춰서고 김대중 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박수가 쏟아지고 눈길이 마주친 직원들의 목례가 이어졌고, 김대통령은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도열 행렬 사이를 걸어서 집무실 쪽으로 향했다.

김대통령이 그 길을 잠시나마 걸어가는 모습은 청와대 경내에서 좀체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한민족으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노벨상, 그것도 평화상을 현직 대통령이 받은 마당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서 마련한 약식 잔치였다. 그야말로 조촐했지만 청와대 직원들로서는 참으로 감격적이고 뜻깊은 행사로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1]

물론, 이러한 축하 열기가 좁은 청와대 안에서만 머물 수는 없었다. 그 다음주에 서울에서 열린 아셈회의까지 이어졌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아셈) 3차 정상회의가 열린 20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장 바쁘고 화려한 하루였다. 이날 모든 아셈 일정의 중심에는 이번 회의의 의장인 김 대통령이 있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아침 845분부터 정상회의가 열린 코엑스 앞 현관에서 각국 정상들을 맞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920분까지 1~2분 간격으로 도착한 25명의 손님들에게 김 대통령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정성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김 대통령은 개회연설에서 "오늘 저는 특별한 감회 속에 여러분을 맞게 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광은 오직 우리 국민과 여러분의 성원의 덕으로 생각하고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김 대통령의 뒤를 이어 연설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보다 더 합당한 선택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치하를 받아 마땅한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그는 아시아의 진정한 지도자이며,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칭찬한 뒤, 아예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와 정의를 위한 염원이 자리잡고 있는 한 세상이 결코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김 대통령의 옥중서신 대목을 인용해 자신의 연설을 매듭지었다.』[2]

의심의 여지 없이, 김대중으로서는 아마 이 때가, 그의 재임 기간은 물론이고 전 인생을 통 털어서도 최고 절정의 순간, 화룡점정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배경에 대해 혹시나 모를 오해나 음해를 우려해서인지 몹시나 조심스럽고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인사가 누구인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다만 국내에서 추천을 받지 않았고 외국인사들에 의해서만 추천됐다고 청와대측은 밝혔다. 김대통령의 한 측근은 “김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외국인사 중 특히 과거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인사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 중 일부는 아태재단 자문역도 맡고 있다”고 밝혔다.』[3]

물론, 천편일률적으로 열광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 중에는 노벨상 수상을 시비하거나 딴지를 거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들은 축하 분위기에 묻혀 버리거나, 속좁은 인간의 딴죽걸기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 중에서도, DJ 평생의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YS의 반응은 유독 유별난 점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3일 오후 6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말살, 언론탄압, 부정선거 하는 독재자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특강을 위해 고려대에 들어가려다 학생들에게 제지당한 뒤 고려대 앞에 세워둔 승용차 속에서 “강연 초청을 받고 왔으나 10시간 동안 차 속에 갇혀 못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자유며 인권이며 정의를 얘기하느냐”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4]

YS는 며칠이 지나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던지, 사흘 후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다음과 같이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맹비난했다.

『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북한에 너무나 많은 양보와 경제적 지원을 했다. 1973년말 미국의 키신저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결정됐던 월맹의 레둑토 공산당 서기장이 수상을 거부하고 1년 만에 월남을 공산화했다. 한국도 그렇게 가고 있다. 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을 포기했다는 김 대통령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며,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높은 단계’로 가는 첫 단계이다. 김 대통령이 인권주의자라면 북한에서 핍박받는 많은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하루 속히 송환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이날 반찬으로 나온 멸치조림과 관련해 "특히 내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자기 집에서 잡기 때문에 멸치 값이 비싸다'는 소문을 만들어냈다"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니."라고 비아냥댔다.

그는 이날 13일 학생들과의 14시간에 걸친 고려대 앞 대치 속에서 소변 보기에 대한 고충 등 해프닝도 거리낌없이 털어놨다. 그는 "오랜 대치 중 어떻게 소변을 해결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말도 없이 경호원이 분유통을 들고 와 해소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5]

YS처럼 원색적인 비난은 아니더라도 은근히 딴지를 거는 목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노벨평화상은 북유럽 선진국의 고매한 세계관을 반영할 뿐이며, 평화주의 자체가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도박이라는 것을 역사는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먼나라 사람들이 '양보하고 잘 지내라'고 칭찬하면서 멋있는 상을 주는 것이, 사대주의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어떤 영향을 내포하는지 등골에 서늘한 땀을 흐르게 한다" "진정한 평화는 적대세력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고 양보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겠다'는 평화주의자의 매물이 아니다.』[6]

또한, 장기표 민국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제 노벨상을 받았으니 나라를 생각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엊는 글을 띄웠다. 그는  『김 대통령은 노벨상을 타기 위해 북한에 너무많은 것을 줬다. 나라 경제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놓고 노벨상을 탄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제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노벨상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며 몰아 부쳤다.

한편,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크게 기여했고, 공동 수상이 점쳐지던 김정일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으례 그렇듯이 북한은 아무일 없는 양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애써 무시했다. 다음의 짧은 기사에서 보듯이, 김정일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에 대해 끝내 아무런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언론은 15일까지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아무런 보도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정규 뉴스시간인 오전 6시를 비롯해 7시 와 8시 뉴스시간에도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일절 전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이 발표된 13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조명록 차수의 귀국소식을 속보로 내보냈다.』[7]

마지막으로, 날이면 날마다 서로 만나면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대한민국 정치권은 김대중의 노벨상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보자.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소식이 전해지기 직전, 정치권에서는 이미 이 문제를 놓고 물밑에서는 날선 신경전이 벌이고 있었다. 아래의 두 기사는 그 때의 미묘했던 정치권의 분위기를 잘 그려내 준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 부의장이 2일 난데 없는 ‘노벨상 로비설’을 제기, 구설수에 올랐다. 김 부의장은 이날 열린 총재단회의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0순위에 올랐는데, 이는 ‘한국식 로비’덕분이라는 말도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부의장이 돌출발언을 하자 놀란 사람은 권철현 대변인. 권 대변인은 김 부의장을 따로 불러내 “미묘한 시점에 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질책’을 했다는 후문.

이날 오전 이회창 총재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영수회담 개최를 다시 한번 촉구한 마당에 공연히 여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 권 대변인은 나중에 다시 기자들에게 “김 부의장의 말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만큼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8]

10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유흥수 의원이 ‘평노벨평화상 로비설’을 제기했다. 유 의원은 회의 도중 갑자기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지난 8월 셸 보네비크 노르웨이 전총리가 방문한 사실을 들고 나왔다.

유의원은 “노르웨이 전총리가 구주에서는 휴가철인데 8월에 아·태재단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느냐”며, “특히 그가 비밀스럽게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 별도의 방을 얻어 상봉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돌아갔다는 말이 맞느냐”고 추궁했다. 그는 보네비크 전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의 면담설의 진상도 따졌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나는 당시 뉴욕에 가 국내에 없었고, 노르웨이 전총리가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켜갔다. 하지만 유 의원은 회의 직후 아·태민주지도자회의의 초청에 따라 보네비크 전총리가 방한했다는 내용의 외교부 자료를 공개했고, 아·태측은 “보네비크 전총리가 서남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길에 한국에 잠시 들렀다”고 시인했다.』[9]

이렇게 몇 주가 지났다. 광적인 축하열기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낙엽이 지고 초겨울에 접어들 즈음, 축하 열기는 시들해지면서 서서히 비판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먼저 보수 언론의 대명사격인 조선, 중앙, 동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수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당초 귀 밝고 눈치 빠른 국내 언론은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벌이는 “거대한 쇼”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딱히 증거가 없으니 기사를 쓸 수 없었다. 대략 감들은 잡고 있었지만, 모두들 쉬쉬했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DJ의 수상식 참가를 재고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도 등장했다. DJ와 그의 측근들은 보수 언론의 비아냥에 격노했다. 그 다음해에 있을 사상 초유의 언론사 세무조사의 전주곡은 이때 이미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1] 월간중앙, 2000. 11월호, “수상소식 발표 이틀 전에 알았다

[2] 한겨레신문, 2000.10.21., 아셈/DJ 가장 바쁜, 가장 화려한 하루

[3] 국민일보, 2000.10.13., 추천자와 지지자는 누구

[4] 국민일보, 2000.10.14., 김 전대통령 특강, 학생들이 저지

[5] 한겨레신문, 2000.10.17., 문전박대 YS 노벨상에 분풀이

[6] 한겨레신문, 2000.10.18., 자유기업인의 노벨상 딴죽걸기

[7] 매일경제신문, 2000.10.15., 북한, 노벨상 보도 안하는 까닭

[8] 한국일보, 2000.10.3., 이번에는 한나라당 김만제부의장 ‘막말’

[9] 문화일보, 2000.10.11., 야의원, ‘노벨상 로비설’ 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