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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프로젝트(연재중)/1. 수상자 "김대융"

1. 수상자 “김대융”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여, 김대융 대통령에게 2000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수십년간 독재정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오랜 기간 망명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그 나라의 민주지도자로 부상했다. 그가1997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은 전 세계 민주국가의 대열에 결정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민주적인 정부를 강화하고 나라 안의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 대통령은 또한 보편적 인권의 주도적인 수호자로서, 강력한 도덕적인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 왔다. 그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동티모르의 탄압 반대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한간의 50년 이상된 전쟁과 적대감 극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그의 북한 방문은 남북한간 긴장을 완화하는 촉진제가 됐다. 이제 한국에서도 냉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는 한국과 이웃국가, 특히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한반도에서의 화해 진전과 재통일을 위한 북한과 다른 국가 지도자의 기여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1]

2000 10 13,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은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이와 같이 전했다.  그는 “J”이응으로 발음하는 북구인 특유의 발음으로, 김대중을 김대융이라고 불렀다.

같은 시각, 청와대 관저에서는 김한정 제1부속실장이 초조한 마음으로 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0 1013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날이죠. 통상 노벨상은 발표 20분 전에 수상자에게 통보해 주는 것이 관례였죠. 그런데 연락이 안 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노르웨이 노벨평화상위원회 측에서 청와대로 국제전화를 시도했는데, 교환 전화로 걸어 통화 연결이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오후 6시 정각, 저는 청와대 관저에서 몹시 초조한 심정으로 CNN 뉴스를 보고 있었지요. 군나르 베르게 노벨상위원장이 노벨연구소 발표식장으로 걸어 들어 왔을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인권 증진,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코멘트를 듣고 바로 관저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두 분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계시는데 꼭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 같더라고요. “대통령님, 축하 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저도 모르게 울먹였던지 목소리가 몹시 떨렸어요. “오, 그래…” 하시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환하게 웃는 두 분의 모습을 앞으로도 잊을 수는 없겠지요?[2]

2003 여름, 청와대에서 나온 지 몇 달 후, 김한정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3년 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던 감격의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렇다. 무척 감격했을 것이다. 감격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온 나라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에 충분한 일대 사건 이었다. 비단 노벨상 공작을 직접 지휘한 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응당 감격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노벨상이더란 말인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이지 않은가? 때마침 노벨상 재정 100주년에 맞추어 받은 특별한 상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온통 감격과 축하의 물결로 넘쳐 났다. 당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다시 느껴보기 위해 잠시 시계를 돌려, 그 당시 신문 기사들을 몇 개 들추어 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드디어 해냈다.만세! 만세!”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57, 여객선으로 2시간30분이 걸리는 서남해의 작은 섬 하의도가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13일 오후 김 대통령이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섬 전체가 순식간에 잔치분위기로 뒤덮였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시내 역시 노벨상 수상소식이 발표되자마자 거리 곳곳에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등 온통 축제 분위기였으며 전남도청 등 광주시내 주요 건물에도 축하 현수막이 나붙어 역사적인 수상을 축하했다.[3]

언제나 그렇듯이, 국가적 경사가 생길 때면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약삭빠른 장사꾼부터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래 기사들을 그런 정황을 잘 보여 주는 예인데,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의미에서, 조금 길지만 소개해 본다.

『종로구 종로3가 서울극장 옆 종로점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점 건너편의 삼성점 등 닭익는 마을 체인점 2곳은 13일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기분좋은 날’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14일부터 사흘간 닭불고기와 국밥 등 점심식사를 ‘공짜’로 제공하기로 결정, 15일 하루 점심시간에만 400명 가량의 손님이 닭불고기를 먹으며 노벨상 수상을 축하했다고. 14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식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이날 하루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4]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자 기업들은 다양한 'DJ 노벨상 축하 마케팅'을 펼치기로 했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터진 경사인 만큼 이번 수상을 국민적인 축제 분위기로 승화시키면서 동시에 제품판매로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서울시내 대형서점은 13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 이 알려지자 특별코너를 설치하는 등 김대중 대통령 저서 특수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는 이날 오전부터 2개의 전시대를 마련해 「3단계 통일론」, 「옥중서신」, 「나의 삶 나의 길」 등 김 대통령의 저서는 물론 「내일을 위한 기도」와 「나의 사랑 나의 조국」등 이희호 여사의 저서,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등 관련 서적 60여종을 전시해 놓았다.[5]

『통신업체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 스웨덴 노르웨이와의 국제전화 요금을 50% 인하키로 해 화제다. 별정통신업체인 인퍼텔은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노벨의 출생지인 스웨덴과 노벨평화상 시상식 개최지인 노르웨이 등 2개국에 한해 앞으로 2개월간 국제전화 요금을 50% 할인해주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6]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아파트 가격까지 낮췄다. 월드건설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 서울 목동에 짓고 있는 월드메르디앙과 현재 입주중인 김포 장기지구 월드메르디앙 4, 5차 아파트의 일부세대를 할인가로 공급한다고 밝혔다. 분양가격이 1 6,169만원인 목동 33평형 2세대는 1,000만원이 낮은 15,000만원선에 판매한다. 김포 장기 아파트는 49, 62평형 각 2세대를 분양가보다 15% 낮은 가격에 내놓았다.[7]

『한국담배인삼공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의장도안 등을 넣은 담배를 발매한다고 24일 밝혔다. 25일부터 전국에서 판매되는 기념담배는 '디스' '타임' 5종으로 모두 25000만갑이다.[8]

기사들 가운데는 조금 오버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없지 않지만, 뭐 어떠랴,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주자. 역사적인 노벨상 수상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기회를 김대중의 우상화 작업에 이용하려는 아부꾼들은 어떨까? 다음 기사도 보자.

『김 대통령이 지난 81 1월부터 82년 말까지 23개월 동안 수감된 청주교도소 병사7호 감방이 영구 보존된다. 청주교도소는 지난 14일 처음으로 감방을 공개한 데 이어 이 감방을 영구 보존할 방침이라고 16일 밝혔다. 당시 수감자가 대통령이 된 데다 노벨평화상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적인 현장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교도소측은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에서 무기수로 감형된 뒤 23개월 동안 갇혀있던 이곳 청주교도소 병사 7호실은 당시 그대로 복원돼 있다. 창고였던 곳을 독감방으로 개조한 이곳은 김대통령의 수감생활 이후 다른 수감자는 들이지 않았었다.[9]

이건 아닌 것 같다. 좀 심하다. 자신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사실조차 노벨상으로 물타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감방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어쨌든 김대중의 노벨상 축하 물결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세계 각지에서도 축하 메세지가 물밀 듯 답지했다. 별볼일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줄잡아 수백명에 달하는 각국의 정상들과 지인들이 축하인사를 전해 왔다.

『지난 주말 세계 10개국 정상들과 30명 가까운 전직 대통령, 국제기구 지도자 등으로부터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청와대에 쇄도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모리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슈뢰더 독일 총리, 참피 이탈리아 대통령, 하벨 체코공화국 대통령, 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 대통령,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사마란치 IOC 위원장,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 쾰러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등이 전화·서한· 팩스를 보내 축하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4일 김 대통령에게 전화해, “김 대통령만큼 가치 있는 상을 받을 만한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중동사태도 김 대통령의 남북 화해·협력 노력을 본보기 삼아 평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쾰러 IMF 총재는 서한을 보내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자긍심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축하했다.

이 밖에 수상이 발표된 13일 저녁에만 청와대로 수백 통의 축하 전화가 걸려왔으며 축하 화분도 답지했고, 세계 각지의 교포, 상사 주재원과 국내 거주 국민들도 청와대 홈페이지에 수천 통의 축하 이메일을 통해 “한국민으로서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13일 저녁 평소보다 20배나 많은 1만여명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해 서버가 다운됐으며, 14일 아침에도 한 차례 다운됐다.[10]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13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을 성공시켜 남북 화해와 협력을 향한 새로운 조류를 만들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이같은 빛나는 업적과 한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김 대통령의 신념 및 열의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노벨상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한 김 대통령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존경"이라고 축하했다.[11]


 


[1]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보도자료 http://www.nobelprize.org/nobel_prizes/peace/laureates/2000/press.html

[2] 월간중앙, 2003. 7월호, “ 청와대부속실장 김한정, DJ 보필 1,200일의 소회

기사는 김한정의  유일한 언론 인터뷰 기사다. 기사는 청와대에서 나온 DJ 김한정이 노무현 정권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한참  “쫄고있던 시점에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3] 국민일보, 2000.10.13., 김대통령 수상에 하의도는 축제 물결

[4] 동아일보, 2000.10.15., 체인점 ‘닭익는마을’ 노벨상 축하 16일 점심 공짜

[5] 한국경제, 2000.10.14., 기업들, DJ 노벨상 축하 마케팅 준비

[7] 한국일보, 2000.10.22.,  DJ 노벨상 기념 아파트값 할인

[8] 연합뉴스, 2000.10.24.,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기념담배 발매

[9] 서울신문, 2000.10.17., “김대통령 수감 ‘1.7 감방영구 보존

[10] 연합뉴스, 2000.10.14., “ 대통령에 국내외 축하 쇄도 (종합)”

[11] 한국경제, 2000.10.14., 각국 지도자들 일제히 축하 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