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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프로젝트(연재중)/프롤로그: 마침내 망명이다

프롤로그 - 마침내 망명이다

일년전 이맘때, 2011 12 11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은 오랫 동안 끌어오던 망명 문제가 최종 마무리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미 이민국 담당 검사와 8년째 씨름 중이었데, 마침내 그 날, 미 필라델피아 미민 법원의 찰스 허니맨 판사로부터 정치적 망명을 허락한다.”는 최종 판결을 통보 받았다. 그 판결 덕택에, 나의 가족은 비로소 강제추방이라는 해묵은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동시에 나를 송환시켜 진실의 입을 틀어 막으려던 국정원의 오랜 노력도 결국 수포로 돌아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원은 나의 망명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나의 주위를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2003,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반역적인 대북송금 문제, 임동원의 간첩 혐의, 그리고 김대중 정권의 여러 비리에 대해 양심증언을 하고 난 후, 그 해 말에 미 망명사무소에다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었다.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망명을 신청하자마자 미 이민국 검사가 나를 불법체류자로 소환했다. 미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민국 검찰에 소환되고 나면 자동적으로 망명사무소의 관할권은 없어지고 추방재판으로 회부된다. 미 이민 검찰의 이러한 신속한 행보는 명백하게 나의 망명 신청을 방해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졌다.

2004년 초, 이민 검찰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나의 가족이 내 대신 망명을 다시 신청했다. 집사람이 망명심사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또다시 이례적인 일이 이어졌다. 미 망명사무소는 나의 가족에 대한 결정을 질질 끌기만 했다. 그 후 무려 6 년간이나 아무런 결정을 통보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대중이 사망하고 난 후인 2009년 가을에서야 겨우 거부결정을 통지해 왔다. 이러한 미 미민국의 극히 이례적인 처사에도 불구하고, 이날 허니맨 판사의 최종 판결은 아직도 미국에 양심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우리 가족의 망명 문제를 가지고 왜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열을 낭비했을까? 이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통상 망명 인터뷰를 한 후 2 주만에 가부를 결정해 주는 게 관례인 점을 감안한다면, 나와 내 가족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한미간의 외교 관계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보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미국은 나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락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곤란한 처지에 빠뜨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나의 정치적 망명을 거부함으로써 양심적인 내부고발자의 인권을 소홀히 했다는 국제적인 비난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에서 망명을 허락받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3 세계의 독재국가나 분쟁지역으로부터의 망명은 빈번한 일이지만안정적인 민주국가로부터의 망명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물론요즘도 종교적 박해나 다른 이유로 망명을 허용받는 한국인이 가끔 있긴 하다그것도 일년에 두어 건 정도이고,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망명을 허락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일 것이다한국과 미국이 동맹국가라는 사실도 한국인의 망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더욱이대한민국의 정보기관 출신이 정치적 망명을 허락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지난 1970년대 중반코리아 게이트가 터지고 한미관계가 한창 갈등을 겪었을 때 중앙정보부 직원 두 명이 망명한 적은 있었다그 후 30 여년간 여하한 이유로도 국정원 직원의 망명은 없었다.

사실허니맨 판사의 망명허락 판결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나는 2008 4 15동 판사로부터 이미 한 차례 망명 허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당시 그는『이 가족의 정치적인 망명을 받기 위한 노력은 이상하게도 오랫 동안 뭔가에 걸려 있는 것 같아 보인다이들의 주장은 적어도 공안기관에게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본 법정은 정부 측에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거듭 명령 했고이민국 검사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그동안 미 국무부는 아무런 개별 의견을 내놓지 않았으며미국의 공안기관들도 아무런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허니맨 판사는 나에 대해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망명자다.』라고 판결했다.[1] 미 이민국 검사는 즉시 항소했고그 후 나는 3 6개월 이라는 세월을 더 싸워야 했다

미 이민국 검사의 항소를 받은 미 이민국 항소 법원은 허니맨 판사에게 증거를 다시 살펴보고 국내 정치 상황의 변화 등을 감안하여 "다시 한 번 더 재판을 하라."며 환송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항소법원의 결정에 따라 두번째 재판이 2011 11 11일 열렸다. 두번째 재판에서는, 원로 언론인 던 커크씨가 서울에서 날아와 나의 증인이 되어 주었다. 워싱턴의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솔티씨도 전화로 증언에 임했다두 사람은 모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증언해 주었다.[2] 또다시 검사가 항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판사는 원고와 피고 양측에 다시 한 번 최종 진술서를 제출토록 명령했다그리고 정확히 한 달후 12 11일에 30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판결문이 송달된 것이다.

허니맨 판사는 그의 판결문에서『본 사건의 피고는 한국으로 송환될 경우 그의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한국 정부나 국정원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합리적인 근거가 충분이 있기 때문에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망명을 허락 받을 자격이 있다.』고 명시했다. 그는 또한『피고는 북한 정권으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커며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피고를 지켜줄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판시했다.[3] 다행이 이번에는 이민국 검사가 항소를 포기했고 허니맨 판사의 판결은 확정되었다이로써 나는 대한민국 출신으로는 첫번째 "내부고발자" 망명객이 됐다.

나의 망명허락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여러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해 주었다먼저주간한국의 윤지환 기자가 특종 기사를 썼다.[4] 나는 설날 연휴를 맞아 그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중에 우연히 미 법정의 최종 망명 허락 사실을 언급했다. 윤 기자는 나의 판결 결과가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는지그가 속해 있던 주간한국에 기사를 준비했다고 한다나는 그러려니 했다그런데초고를 본 편집장이 그 기사를 급히 일간으로 돌려서 특종 보도하게 했다는 것이다이어서 동아일보의 허문명 기자가 나의 인터뷰 기사를 크게 실어 주었다.[5] 주간한국과 월간중앙 등 잡지들도 나의 인터뷰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뤄 주었다.[6]

며칠 후전혀 뜻밖에도정몽준 의원이 동아일보에 기명 칼럼을 기고했다그는 『김기삼씨의 미국 망명을 보며』라는 제목의 글에서,『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우리가 덮고 가려고 했던 대북정책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고 썼다그는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기에 이처럼 수치스러운 판결이 나올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한국과 미국처럼 긴밀한 동맹국 간에 정치적 망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면서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강한 논조로 질타했다그는『김씨 사건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달린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북한동포들은 품어야 하지만무슨 희생이 따르더라도 북한 정권에는 대적해야 한다무엇보다 우리 안보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김 씨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며 글을 맺었다.[7]

나는 후에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정 의원의 칼럼이 실리게 된 경위를 들었다. 그 칼럼은 정몽준 의원실에서 동아일보에 직접 의뢰하여 실었다는 것이다나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며그가 단순히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아버지 잘 만난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그의 대북정책과 국제문제에 대한 시각이 보통의 정치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칼럼을 읽고 나서 그의 탁월한 안보감각이 더욱 돋보였다적어도 대한민국의 안보 문제에 관한 한그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이 아닌가 싶다.

지난 2008 4 15, 나의 첫번째 망명허락 판결이 나온 바로 그 날마침 김대중과 그 졸개들이 미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아마도 그 때가 김대중으로서는 마지막 해외 나들이였을 것이다그날 아침 나는 제넷 힌사워 토마스 변호사 할머니에게, “김대중 일행이 우리의 재판 결과를 축하해 주려고 직접 태평양을 건너 왔나 보다.”며 농담했었다그의 방미는 겉으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주한 미 대사를 지낸 바 있고당시에는 터프츠 대학 내 플레쳐 스쿨의 학장으로 있던보스워스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단언컨데 그의 방미는 딴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상식적으로 판단해 볼 때혈액투석기를 달고 사는 80 넘은 노인이 그저 대학을 방문하여 연설이나 할 요량으로 그 먼길을 여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에 전해들은 풍문에 의하면, “이 여행에서 김대중과 박지원은 론스타의 그레이켄 회장을 만나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 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그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김대중과 박지원이 그레이켄 회장과 담판을 지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내가 알 길도 확인할 길도 없다다만, ‘김대중이 론스타에 우회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나의 추측을 확인해 주기라도 하듯이김대중이 한국으로 돌아간 지 한 달쯤 후에외한은행의 실세 부행장으로 있던 김형민이 갑자기 사표를 내고 떠났다김형민은 노벨상 공작 당시 청와대 부속실에서 김한정의 조수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김대중의 퇴임 후에도 김대중의 비서로 일하다가 외환은행으로 옮겼던 인물이다얼마 후 론스타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챙겨 떠남으로써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먹튀가 되었다당시 세간에는 소위 론스타의 검은머리 대주주가 김대중일 것이라는 의혹이 줄곧 제기되었지만론스타가 떠나자 그런 의혹도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고 말았다. 김대중의 론스타 커넥션은 언젠가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일이다. 

2008 4 22일 오후김대중이 하버드대에서 강연하기 전박지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마침 그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나의 망명문제에 대해 질문했다박지원은『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의 노벨상 의혹제기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다일고의 대응할 가치도 없다대북송금 특검에서 현대가 5억 달러를 상업베이스 차원에서 7가지 사업대가로 지불했다고 결론냈는데, 15억 달러를 제공했다는 것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그는또한 『"노벨평화상이 로비에 의해 결정되면 노벨로비상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면서『국정원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범법자인 김기삼은 국정원 말단직원으로 그런 의혹을 제기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8] 이로써 그는그의 긴 거짓말 리스트에 또 한 번의 거짓말 기록을 추가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내가 낮설고 물설은 이국 땅에서 왜 이토록 어려운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그것은 내가 불행히도 김대중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반역하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국제적인 사기와 요설이 순전히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선사하기 위해 꾸며진 연극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에 근무했던 공무원으로서 김대중 정권의 이러한 반역적인 범죄행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그건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그것이 이 책을 통해 김대중이 벌인 노벨상 공작의 전모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이다. 이하의 기록은 허구가 아니다.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넌픽션이다. 만약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 될 것이다이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의가 있으면 누구라도 연락을 주시길 빈다. 기꺼이 경청하고 겸허하게 수용할 것이다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질책을 바란다.



[1] Charles M. Honeymen. “Oral Decision of the Immigration Judge,” Immigration Court, U.S. Department of Justice, Philadelphia, April 15, 2008, p. 4.

[2] Charles M. Honeyman. “Decision and Order of the Immigration Judge,” Immigration Court, U.S. Department of Justice, Philadelphia, December 11, 2011, p. 25.

[3] Ibid

[4] 주간한국, "버림받은 내부 고발자 망명하다," 2012.1.23.

[5] 동아일보, "DJ, 노벨상 타려 김정일에 15 달러 주고는 2 달러만 줬다고...," 2012.2.13.

[6] 주간한국, "미국 망명 승인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김기삼씨 단독 인터뷰," 2012.1.27. ; 월간중앙, "DJ 노벨상 공작 의혹 자료 인터넷에 올리겠다," 2012, 3월호.

[7] 동아일보, "김기삼씨의 미국 망명을 보며," 201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