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독립신문 (2003.1.30): 김대중 노벨상 공작 폭로 전 안기부 직원
독립신문 인터뷰 (
문) 국정원에서 근무할 때 노벨상 로비팀에 직접 참여했나?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다. 노벨상 로비는 극비로 진행된 일이었다. 그러나,
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사람들이 반신반의한다.
“내가 밝힌 내용은 거의 사실이다. 그만큼 자신 있다. 내 글을 인용해서 기사화 하더라도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 당시
“독립신문이 기사에서 그를
대외협력보좌관이라고 썼던데, 그것은 아니다. 대외협력보좌관은
다른 분이 있었다.
문)
“
문) 노벨상 로비에 쓰인 자금이 어떻게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인가?
“내가 듣기론 대부분의 돈이 유로화로 건네졌다고 한다. 한날 한시에 전달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나누어서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환전관계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문) 국정원에서
“일을 극비로 추진했기 때문에
노벨상 로비 부분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문) 일부에서는 ‘지난 대선 전에 터트릴 일이지, 왜 이제서야 터트렸냐’고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대선 전에 국내로 들어가 한나라당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 왜 그랬는가?
“이유야 확답할 수 없지만, 내가 짐작컨대 자기들이 메가톤급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폭로했던 메모보고서(도청자료)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자 이 일도 반신반의한 것으로 보인다.”
문) 당시 한나라당에 가져 간 자료는 아직도 있나?
“그건 전화상으로는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국내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주위의 동료들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몸조심을 하고 있다.”
문) 혹시 여권과 이 문제를 가지고 상의한 적이 있나? 대북뒷거래자금 2억 달러가 터져 나온 시점과 묘하게 일치해 여권의 각본에 의해 이 두 건의 일이 터진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그런 적 없다. 단지 오마이뉴스가 2억 달러 문제를 기사화하는 것으로 보고 ‘청와대가 일부만 인정하고 대충 뭉기고 지나가려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도 터트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문) 추가로 폭로할 내용이 있나?
“할말은 많지만, 당분간은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겠다.”
독립신문과의 2차
인터뷰(
문)
“나도 보았다.
내가 성격 불안정으로 인해 정보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자주 옮겨 다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학력고사에서 남들보다 좀 잘 찍어서 소위 일류대학이란 델 나왔다. 그것이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는 데 좀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평소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인관 관계를 유지한 것도 자구 옮겨 다닐 수 있는 여건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문)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좀 많이 아는 편이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일부러 국내, 해외, 대북 부서들을 섭렵했다. 한반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부서를 자주 바꾸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사실 차장 산하를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국내 차장 산하라 하더라도 수사에서 정보로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능력과 품성을 인정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좀 쑥스럽지만, 나는 내 업무에 자신이 있었고, 주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주위의 평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능력이 없고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이라면 해당 부서에서 나를 불렀을 이유가 없다. 대외협력보좌관실만 하더라도 국정원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뽑아야 썼다. 내가 성격이상자라면 그 팀의 팀장이 나를 불러 같이 일했을 리가 있겠는가. 나랑 일하는 것이 불안하면 나를 불렀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
문)
“동아일보 기자와 통화했는데 뭔가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국내에 들어갔을 때
독립신문 3차 인터뷰 (2003년 2월)
황장엽씨로부터 용기를 얻어,
국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하자는 차원에서 공개
한편
그는 지난
그는 황씨에 대해, "소설가
그는 이어서, "나는 황선생님을 존경한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 숨쉬는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황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인간중심주의자로 개종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난 황장엽주의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황장엽 씨는 작별인사 자리에서,
"북한을 조금만 더 봉쇄하면 곧 붕괴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망명했는데
그는 "그때 황선생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인간중심철학의 몇 가지 문제라는 책자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성경과 함께 항상 가까이 놓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책자는 시대정신이라는 출판사에서 인쇄하여 제본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국정원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내려 결국 시판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씨의 처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요구하는 기자에게
외부인사 만날 때마다 "자살하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관련 하여
"김덕홍 선생이 인터뷰에서 '황선생이 북한의
"그 후 황선생님이 외부로 의견을 전달하던 유일한 창구였던 탈북자동지회의 회지도 2000년 7월 황선생님이 발표한
6.15 정상회담관련 기사 때문에 일방적으로 폐간 조치를 당했습니다. 당시 이 기사는 남북정상회담의
본질을 정확히 분석한 탁월한 견해였는데, 이에 격노한
오는 2월 13일 황장엽 선생의 팔순 잔치가 예정되어 있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황선생님께 희망을 잃지 마시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는 팔순 축수를 전해 달라면서, "황선생님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사셔서 영광의 그날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