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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11 펜실바니아의 어느 시골에서

54. 대북송금 특검과 정몽헌 회장의 타살 의혹

다시 대북송금 얘기다. 정권이 바뀌고 3월로 접어들면서, 대선에 패배하여 주눅이 들어 있던 한나라당이 서서히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임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을 승인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특검이란 승부수를 가지고 김대중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 현직 대통령간의 관계에 금이 가는 듯 했다.

최근 발간된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에서는 이 때 노 대통령이 특검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1] 그 책의 설명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송금사실을 인정하면 통치행위론으로 무마하여 넘어갈 수 있었는데, 끝내 송금하실을 몰랐다고 우겼기 때문에 통치행위론을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고 한다. 박지원이라도 총대를 멨더라면 특검없이 갈 수가 있었는데 그것도 안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특검으로 갔다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애초부터 특검을 하더라도 남북관계에 손상을 줄 염려가 있는 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은 했지만, 처음부터 송두환 특별검사 팀에게는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검에 참여한 인사의 면면으로 보나 그들의 자세로 보나 초유의 반역사건을 엄정하게 다루려는 의지가 묻어나지 않았다. 나는 특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다. 그들은 의혹을 제기했던 나에게는 수사협조 요청을 해 오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한, 김대중은 물론이고 김한정도 조사하지 않았다. 빈 껍데기의 수사였다.

특검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몇 달간의 조사를 통해 송두환 특검팀은, “북한으로 송금된 돈의 액수는 총 5억 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특검팀은 “5억 달러 중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1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히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아무런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특검 수사가 끝나고, 그 부산물로 권노갑과 박지원의 비리가 불거져 나왔다. 이들이 김대중의 죄를 일부나마 대신 뒤집어 쓰는 형국으로 변했다. 지리한 수사와 공방 끝에 박지원 씨와 권노갑 씨는 구속되었지만, 한참 지나 이들도 결국 특사로 풀려났다. 대북송금에 관여했던 다른 인사들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실질적으로 처벌 받은 자는 없었던 셈이다. 용두사미, 태산명동서일필이 되었다. 반역범들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만 쥐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2003 8월 초, 검찰의 후속 수사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이 그만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하였지만, 정황으로 보아 타살의 의혹을 숨길 수 없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자살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정몽헌 회장은 반역적인 대북 불법송금의 공범이긴 했지만, 그가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통감했다.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그분의 명복을 빈다.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2006년 초 정몽헌 회장이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월간조선에 잇달아 보도되었다.[2] 그 기사들은 타살일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 증거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기사의 골자는, “정몽헌 회장의 유서는 사전에 조작된 것이었고, 그의 자살극도 사전 각본에 의해 연출된 것이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자살극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천재적인 각본에 따라 정 회장이 자살을 가장하여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의 기사는 주로 익명의 검찰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사의 신빙성은 제보자의 신뢰성과 직결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그 기사의 제보자는 극히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름아닌 월간조선 2006 1월 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박주원 씨였기 때문이었다.[3] 기사에 소개된 대로, 그는 대검 중수부 범죄정보기획실에서 오래도록 근무한 베테랑 수사관이었다. 

사실, 나는 이전에 한나라당의 박 모의원으로부터,“정성Ο씨와 박주원 씨가 찾아와 정몽헌 피살설에 대해 제보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사를 쓴 김성동 기자에게 전화하여, “검찰 관계자라는 사람이 월간조선 1월 호에 나온 그 사람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았다. 이에 김 기자는, “김 선생님은 눈치가 참 빠르신 분이군요라며 간접적으로 확인해 줬다. 나는 그 후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그 제보자가 박주원 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박주원 씨는 그 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안산시장에 당선되었다.

한편, 기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정몽헌 회장의 자살 연극을 모의한 사람은, 문맥으로 보아,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그룹 대북사업의 최고 핵심 인사다. 정 회장의 유서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 회장의 유서에는,“당신 너무 자주 윙크하는 버릇을 고치세요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 의하면, 두 사람은 유서의 내용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05년 말 경, 김윤규 씨는 현정은 회장에 의해 현대아산 사장직에서 밀려났다. 그가 쫒겨난 사유는 금강산 사업과 관련한 경미한 부정 사건이었다. 때로는 시점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여기에서도 적용될런지도 모르겠다. 박주원 씨가 한나라당과 언론에 이러한 일들의 제보한 시기와, 김윤규 씨가 현대에서 쫒겨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그것은 2005년 말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믿기엔 너무 요상하다. 

과연 정몽헌 회장을 살해한 주범은 누구란 말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누군가 정몽헌 회장의 입을 막아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의 짐작에는 김대중 측이 가장 그런 입장에 가까울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기사에 의하면, 정몽헌 회장이 죽기 직전에 박주원 씨에게 4통의 유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사라진 유서에서 정몽헌 회장은 김대중 정권의 어느 고위 인사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 한동안 정몽헌 회장을 타살한 청부업자를 추적해 보았다. 내가 어렴풋히 듣기로는, “살인청부업자가 미국으로 도피하여 뉴욕 지역의 어느 전 한인 회장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여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난리를 부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일은 현정은 회장과 가까운 어느 무속인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 무속인은 원통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는 구명시식이라는 술법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소문을 확인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다. 나의 신변의 안전부터 먼저 걱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30 p 이하 참조.

월간조선 2006 2월 호 정몽헌 현대 회장의 죽음의 행로제하 기사 및 동 잡지 2006 3월 호 정몽헌 사망사건의 5대 미스터리제하 기사 참조.

월간조선 2006 1월 호 대검 범죄정보기획실에서 24년간 수사관 생활 마감한 범죄정보 수집의 대가 박주원씨제하 인터뷰 기사 참조.